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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일진이 달라졌어요"…서대문서의 이종격투기 수업

유현욱 기자I 2016.06.15 06:00:00

서울 서대문경찰서 관내 청소년들에게 이종격투기 교육
"무술은 폭력 아닌 평화, 혹독한 훈련으로 체력 인격 배양"
서대문서 관내 학교폭력 작년 22건서 올해 15건으로 급감

학생들이 지난 5월 17일 서울 은평구 투혼정심관에서 ‘UFC 호신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서대문서 제공.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세상에 내 편은 없단 생각에 적개심만 가득했다. 김현성(18·가명)군은 중학생 때부터 길거리 만취한 행인의 지갑과 스마트폰을 훔치는 절도 행각을 일삼았다.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하던 김 군은 지난해엔 소년원 신세까지 졌다. 출소 이후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공부에도 별 흥미가 없다 보니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들과 어울려 PC방·노래방을 전전했고 유흥가를 전전하며 술을 마셨다. 학교에서는 김 군이 장기간 결석하자 유급조치했다. 이렇게 김 군은 ‘학교 밖 청소년’이 됐다.

지난해 말 친구 오토바이를 빼앗은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김 군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인 원유만(57) 경위를 만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원 경위는 이종격투기 전단지를 쥐어주며 ‘한 번 배워보라’고 권했다.

UFC 선수 이름을 줄줄 욀 정도로 이종격투기 마니아인 김 군은 체육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좀 하다 말겠지” 주변의 냉랭한 시선과 달리 김 군은 단 한 차례도 훈련에 빠지지 않았고, 발길을 끊었던 학교에도 돌아갔다. 김 군은 여름에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인 KOG(king of the ground)에 참가하겠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서는 관내 청소년 12명에게 이종격투기를 가르치고 있다. UFC 김동현·정찬성 선수를 길러 낸 홍영규 투혼정심관 관장이 사범을 맡았고, 원 경위도 청소년들과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종격투기 훈련은 원 경위가 홍 관장에게 재능 기부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훈련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7~9시지만, 청소년들의 열의가 넘쳐 예정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다른 경찰관들도 틈나는 대로 간식거리를 사 들고 찾아와 이들을 응원한다.

‘무술은 폭력이 아닌 평화’라는 정신 수양부터 시킨다는 홍 관장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자신을 이겨낼 체력과 인격을 동시에 배양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반응도 뜨겁다. 김 군의 손에 이끌려 훈련에 나오기 시작한 다른 학교 밖 청소년들과 뒤늦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청소년들로 훈련 인원이 늘어 더 넓은 장소로 옮길 지 고민 중이다. 김모(17)양은 “방어용 호신술로 여학생이 배우기에 알맞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어 좋다”고 만족해했다.

그간 서대문서는 관내 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 114명에게 UFC 호신술 교육 외에도 보컬, 댄스, 바리스타 등 다양한 전문가와 연결해 줘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강성영 서대문서 여성청소년과장은 “다양한 취미활동은 사회성과 자신감을 갖게 하고 학교생활 적응력을 높인다”며 “관내 학교 폭력 발생이 지난해 22건에서 올해 15건으로 31.7%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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