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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사장의 性이야기](17)"스무살에 섹스를 알았더라면

채상우 기자I 2016.03.25 07:00:00
[곽유라·최정윤 플레져랩 공동대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이 있다. 온 세상이 봄으로 시끄러운 4월 초, 대학생들은 신학기 첫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터지는 꽃망울, 살랑대는 바람에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 것이다.

고교 시절 내내 ‘대학 가면 ㅇㅇ할 수 있다’를 곱씹으며 청춘을 유예했던 많은 새내기에게 입학 후 맞는 첫봄은 더더욱 설레는 계절이다. 새 운동화를 신은 대학생들에게선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흥분과 새로운 만남, 특히 연애에 대한 기대가 느껴진다.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이 지난해 20~3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 실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9.8%가 20~24세에 첫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그러니 2014년 기준 대학 진학률이 70.9%에 달하는 한국의 경우, 많은 이십 대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첫 파트너 섹스를 경험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20대의 끝자락과 30대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가 스무 살 시절을 돌이켜보면 풋풋했던 만큼 많이 어설펐던 것 같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연애와 달콤한 섹스는 많은 부분 허상에 불과했고, 현실의 관계는 때때로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구질구질하기도 했다.

그 불안하던 시절, 누구도 내 욕망을 찾는 방법, 성적 즐거움의 중요성, ‘좋은 섹스’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자라면서 보고 들은 것들, 인터넷 검색, 잡지와 만화, 책 등에서 얻은 정보를 짜깁기한 것을 바탕으로 뒤숭숭한 채 첫 파트너 섹스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십 년 정도가 흘렀다. 지금 역시 삶과 섹스에 대해 통달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그동안 경험치를 쌓으며 깨달은 바는 있다.

봄날의 예고편 같은 따스한 햇볕 아래를 거닐며, 우리가 갓 성생활을 시작하는 스무 살 여성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를 고민한 끝에 아래와 같이 열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곽유라·최정윤 플레져랩 대표. 사진=플레져랩
◇나의 건강과 행복이 첫 번째

그 어떤 성적 행동을 하건 자신의 즐거움과 안녕을 일 순위에 두어야 한다. 섹스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만일 마음에 일말의 거리낌이 있으면, 행위 중간이건 언제건 멈춰도 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그 모든 성적 행동은 폭력이다.

◇자위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성감을 누가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몸을 잘 아는 사람이 파트너 섹스를 할 때도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기의 몸을 들여봐 주고, 보듬고, 이런저런 자극을 하면서 성감을 개발해보자. 자위는 ‘궁극의 나를 사랑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혈액순환을 돕는 등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성인용품을 사용하는 것도 자위를 위한 방법 중 하나다.

◇피임과 성병 예방은 필수

성병 예방 도구나 피임 기기를 쓰지 않고 섹스를 한 후, 괜히 스멀스멀 아랫도리가 간지러운 기분에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음 생리일을 기다리며 머리를 쥐어뜯는 일이 없길 바란다. 로맨스는 한순간이지만 바이러스는 오래간다(혹은 영원하다.) 자연주기법 등의 피임 방법은 이론상으론 맞지만, 우리 몸은 이론만을 따르지 않으니 언제나 확실한 피임법을 사용하길 권한다. 또 파트너와 서로 주고받는 건강 위험에 대해 알며, 이 부분에 관해 솔직한 것이 예의이자 도덕이다. 무책임하게 구는 사람은 만날 가치가 없다.

◇어설픈 것은 당연하다

섹스도 일종의 춤이다. 본능적으로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부족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또 파트너가 바뀔 땐 호흡과 합을 새로 맞춰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나의 몸과 욕구를 솔직히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신뢰하는 것, 그리고 파트너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포르노 배우처럼 능숙하지 않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본인의 성향에 대해 사과하지 말자

섹스에 관해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와 어떤 섹스를 하건, 혹은 하지 않건 그것에 대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열린 마음을 갖고 파트너와 협의를 하되, 무조건 상대방에 따를 필요는 없다. 신념을 지키건, 경험을 통해 신념을 바꾸건 그건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몸과 섹스에 관해 공부해라

섹스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친구들의 말,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 게시물에 의지하지 말고 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 사유하길 바란다. 의학, 생리학, 사회학, 진화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자. 좋은 책을 발견하면 읽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권하자.

◇섹스 비용은 본인이 벌어라

가족에게 학비와 용돈 지원을 받는다 해도, 적어도 섹스를 위한 비용은 본인이 직접 벌자. 피임·성병 예방 기기를 위한 비용과 숙박비는 절반 정도 부담한다고 할 때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다. 성인의 행동을 하고 싶다면 성인의 책임을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골 여성 의원을 만들어라

대한산부인과 의사회는 만 20세 이상의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은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을 것을 권고해 왔다. 올해부터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국가 암 무료검진 대상이 20세 이상 여성으로까지 확대되었으니, 필요 절차를 알아보고 검진을 받으면 된다. 이왕이면 맘 편히 방문할 수 있는 여성 전문 병원을 찾아 그곳에서 몸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걸 추천한다.

◇이상한 파트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섹스에 관해 자기의 욕구만을 앞세우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당신을 갉아먹는다. 당신은 그 누구도 구원할 의무가 없다. 또 동정심과 죄책감 같은 감정 때문에 당신을 괴롭히는 파트너와 함께해선 안 된다. 당신의 자존감을 해치는 위험한 사람은 빨리 떠나라.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하자.

만약 성폭력, 성추행, 스토킹 피해를 당하거나 임신, 성병 감염 등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관련 기관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해라. 혼자서 불안한 마음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지 말고 빠른 행동을 취하자. 부모님께 지원 요청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엄청난 잔소리와 ‘등짝 스매싱’이 멘탈 붕괴보다는 낫다. 여성 긴급 전화는 1366이다.

욕망은 삶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지만, 건강과 책임이 따르지 않으면 운 나쁘게도 거기에 발목 잡힐 수도 있다. 우리의 말이 모두를 위한 정답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단 하나라도 취할 것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제 막 세상에 뛰어든 스무 살들이 본인의 몸과 마음을 잘 살피며 좋은 섹스를 경험하길 바라며,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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