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한미약품 이전에도 수많은 국내 개발 의약품들이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이미 일부 제품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신약의 시장성이 높지 않거나 경험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로 해외진출이 좌절된 사례도 많다.
◇LG생과·일양·한미 등 시장성·경험부족으로 해외진출 좌절
국산신약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허가를 받은 LG생명과학의 ‘팩티브’는 제휴 파트너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돌연 임상데이터를 문제삼고 손을 떼면서 해외 진출에 차질이 빚어졌다. LG생명과학은 길리어드에 수출한 C형 간염치료제가 부작용을 이유로 임상시험이 중단되면서 개발을 접은 아픈 경험도 있다.
보령제약(003850)은 2012년 터키 제약사와 맺은 4580만달러 규모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의 수출 협약이 현지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해지되면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동화약품은 2007년 미국 P&G사와 총 5억달러 규모의 골다공증치료제 수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09년 P&G사의 전문의약품 사업부가 워너칠콧사에 인수된 후 워너칠곳 측에서 해당 제품의 개발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수출계약은 백지화됐다.
부광약품은 2009년 B형간염치료제 ‘레보비르’를 미국에 수출했지만 제휴 업체인 파마셋이 레보비르의 임상3상 진행 과정에서 근육병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돌연 임상을 중단했다.
일양약품(007570)은 지난 2008년 소화성궤양치료제 ‘놀텍’의 미국 임상을 주도하던 탭(TAP)사가 임상3상 진입단계에서 포기를 선언하면서 미국 진출이 무산됐다. 당시 TAP사를 인수한 다케다가 ‘놀텍’의 경쟁약물을 보유하고 있어 놀텍을 개발을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미약품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미약품(128940)은 지난 2007년 비만약 ‘리덕틸’의 개량신약 ‘슬리머’를 유럽과 호주 등에 수출했다.하지만 같은 성분의 리덕틸이 심혈관 부작용 논란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해외시장 진출도 물거품됐다. 2013년에는 위궤양치료제 ‘에소메졸’이 국산 개량신약 중 최초로 미국 허가를 받았다. 에소메졸은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특허소송을 거치며 힘겹게 미국에서 발매됐지만 정작 시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해외진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기에 수출을 시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단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계약 동향을 보면 전임상과 임상2상 단계에서 기술이전 계약이 많이 발생한다”면서 “국내제약사 자금 여력상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상품가치가 높을 때 판권을 넘기고 개발시기를 앞당기는 전략도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수출 규모 부풀리기 관행 개선돼야
업계에서는 제약사들의 수출 규모 부풀리기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약품의 올해 4건의 수출 규모 7조5605억원은 글로벌제약사에 넘긴 신약이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면 받는 금액이다. 최악의 경우 기술 수출 이후 한 단계도 진전되지 않더라도 한미약품은 계약금으로만 7356억원을 챙긴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제약사들의 수출 계약은 해외 판매 이후 예상 매출액으로 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령제약은 지난 2011년부터 순차적으로 러시아, 브라질, 중국, 인도네시아 등 총 30여개국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 수출 규모는 약 3500억원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확보한 금액은 기술수출료 약 270억원을 제외하면 100억원에도 못 미친다.
한미약품은 2009년, 2011년 미국 머크를 통해 51개국에 약 2조원 규모의 고혈압복합제 ‘아모잘탄’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수출로 유입된 금액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60여개국에 약 7000억원 규모의 보툴리눔톡신제제 ‘나보타’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금액은 예상 매출이기 때문에 현지 시판 이후 정확히 얼마나 유입되기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보타는 미국, 유럽 등에서 2017년 이후 판매가 가능할 전망이다.
의약품은 수출 계약을 맺고 해외 판매 단계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현지 임상시험을 거쳐 보건당국의 허가를 별도로 받고 보험약가 등재와 같은 후속절차를 밟아야 한다. 해외 판매가 시작되더라도 경쟁약물의 등장, 처방패턴의 변화 등과 같은 변수로 판매가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출 계약을 맺더라도 현지 판매가 이뤄지려면 최소 3~4년이 소요되는데 국내제약사들은 수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예상 매출액을 낙관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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