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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축축하게 눌린 산을 그렸더랬다. 거칠다못해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땅으로, 시퍼렇게 죽어 흑갈색 속살을 다 드러낸 색으로 말이다. ‘영월’(2019)이란 작품명까지 따라 가라앉는 듯했다. 그랬던 작가가 문득 하얗고 소담한 꽃을 피워 올렸다. 이웃집 정원 화분에서 자라나던 대파가 꽃을 피운 순간을 끝내 모르는 척하지 않고 말이다.
작가 문규화(33) 얘기다. 현장에서 스케치 대신 수채화를 그리던 작가가 언제 하산해 이웃집 정원까지 넘보게 됐나. 시선만 바뀐 건가. 아니 그 이상이다. 일상의 변화를 알아챌 만한 ‘품’을 넓혔다고 할까. “대파의 생김새가 시시때때로 달라져 보이더라”고, “어느 날은 줄기가 몇대 잘린 단면을 드러내고, 어느 계절에는 줄기 끝에 꽃도 피우더라”고.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파꽃’(Green Onion Flower·2021)은 그 넓힌 품이 피워낸 면면 중 하나일 터. 단순한 구도와 색, 즉흥적 터치로 쌓아내는 방식은 여전하다. 재현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투박한 창작의 방식 그대로.
3월 18일까지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갤러리에스피서 김민수와 여는 2인전 ‘눈의 심장’(Heart of the Eyes)에서 볼 수 있다. 일상을 함께한 사물·동식물·장면 등을 끊임없이 응시하며 때를 기다려 잡아챈 ‘순간’들을 걸었다. 리넨에 아크릴. 145.5×112.1㎝. 갤러리S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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