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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로드]고양이도 피하는 생선 `홍어`<8>

전재욱 기자I 2020.09.05 09:00:00

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진가 발휘한 `흑산도 홍어`
삭히는 항아리 크기로 집안 권세 가늠…`코가 으뜸`
흑산도보다 인천 생산 많아…수입산은 아르헨 1위

음식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평가 대상이 아니죠. 이런 터에 괴상한 음식(괴식·怪食)은 단어 자체로서 모순일 겁니다. 모순이 비롯한 배경을 함께 짚어보시지요.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요. <편집자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홍어는 코로 먹는다.`

천해 어장 전남 흑산도의 생선은 예로부터 으뜸으로 친다. 그러나 냉장·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제대로 맛보기 어려웠다. 선도를 유지할 수 없으니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며칠에 걸쳐 뭍으로 생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상했다. 날이 더우면 더했다. 이 과정을 극복한 생선이 홍어였다. 홍어의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하면서 특유의 삭힌 맛으로 변했다. 이렇게 흑산도 홍어는 고장의 명물이 됐다.

신안수협 흑산도홍어 상품설명 갈무리
코를 찌르는 삭힌 홍어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하루 이틀 먹은 게 아닌 음식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조선 시대 경상도지리지(1424~1425년)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도 실려 있다. 중국의 약학서 본초강목(1596년)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어류학자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1814년)에서 홍어는 뱃속을 깨끗이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적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홍어를 잔치 음식으로 쳤다. 홍어 없이는 잔칫상을 못 차린다는 말도 있다. 홍어는 항아리에 짚을 깔아서 삭히는데, 홍어 삭히는 독의 크기로 그 집의 권세를 가늠했다고 한다. 먹는 방법은 삭힌 홍어를 회로 먹거나 찜이나 무침, 탕으로 즐기기도 한다. 묵은 지와 삼겹살을 곁들인 삼합도 대중적이다. 삭힌 게 싫은 이는 아예 생으로도 먹는다. 부위 가운데 코가 일품이다. 애호가들은 홍어집 주인이 코를 내어와야 대접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만, 내장부터 꼬리와 껍질까지 버리는 게 없다. 관절염에 좋고, 소화가 잘되며,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없다.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찬 성질의 홍어와 더운 성질의 막걸리가 조화를 이룬다. 홍어의 암모니아 성분을 중화하는 데에도 막걸리가 좋다.

홍어 산지는 전국에 분포해 있다. 옹진반도 일대 서해5도가 주요 산지다. 홍어를 주로 즐기는 걸로 인식된 전라도 근해에서 잡히는 양보다 많다. 급으로 치면 전남 흑산도산을 최고로 친다. 워낙 귀한 몸이라서 원산지를 증명하는 명찰(바코드 테그)을 달고 유통한다. 신안군수협 홈페이지를 가면 홍어 생산 이력조회를 할 수 있다. 수산물 플랫폼 바다바바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현재 신안수협 위판장에서 마리당 최고가는 109만원에 팔렸다.

홍어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서 수입한다. 아르헨티나 홍어가 제일 많다. 지난해 2297톤(1094만달러)이 수입됐다. 아르헨티나산 수입 수산물 가운데 오징어(4659톤·1624만달러)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칠레산 홍어는 지난해 415톤(213만달러)이 들어왔다. 수입산 홍어는 2000년 초중반 대부분 칠레산이었는데, 2009년부터 아르헨산이 1위로 올라섰다. 칠레에서 홍어 남획으로 어업이 까다로워진 결과다. 우루과이산 홍어도 지난해 348톤(1027만달러)이 들어와 있다.

남미의 홍어는 한국으로 수출하면서 신세가 폈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잡으면 애물단지 취급했다. 먹지 않는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제외하곤 홍어를 먹는 식문화는 드물다. 최근 들어 유럽 등 서구에서 스테이크나 튀김으로 먹는데 삭히지 않은 채로 요리한다. 삭힌 맛은 한국에서 보편적인데, 질색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강한 향 탓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생선가게 주인이 도둑고양이를 쫓으려고 홍어를 쓴다는 말도 있다. 생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고양이도 홍어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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