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영국)=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지난 15일 런던에 있는 해머스미스 소방서에 도착하자마자 소방관들이 모두 장비를 착용하고 숙소에서 쏜살같이 내려왔다. 화재 현장으로 투입하는 긴박한 상황인 듯했다. 그러나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이렌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폴 왓슨 서장은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며 “상황이 발생하면 6분가량의 골든타임 확보가 절대적이라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도록 빠짐없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화재 등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간의 무게는 어떤 상황과 비교했을 때보다 무겁다. 그러나 국내에서 발생하는 많은 화재 사건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소방차 출동 시 불법 주·정차 등의 문제와 길 터주기 문화의 부재, 인력 부족과 넓은 소방서 관할면적 범위 등은 골든타임 확보의 어려움으로 늘 꼽힌다. 반면 영국은 소방 안전 중심의 제도와 철저한 훈련으로 골든타임을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날 해머스미스 소방서의 서내에서는 출동과 함께 현장 대응 훈련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은 소방서가 자체적으로 뽑은 3명의 신입 소방관이 화재나 사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주를 이뤘다. 런던은 각 소방서에 있는 인사과에서 신입 소방관을 뽑아 총 8개월에 걸친 훈련을 받는데 최종 목적은 골든타임 확보다. 해머스미스 신입 소방관인 마이클(27)은 “팀 단위로 움직이는 현장에서 내 업무 미숙으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어진 훈련에서는 구조사다리를 이용한 인명 구출 훈련이 이어졌다. 3층 높이의 건물에 구조 사다리를 설치한 뒤 부상자 등을 구조하는 훈련에는 입직한지 3개월된 여성 소방관 알렉스(31·여)가 투입됐다. 무거운 사다리를 알렉스를 포함한 4명의 인원이 달라붙어 설치한 뒤 일사불란하게 부상자를 구출해냈다. 알렉스는 “재난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며 “한 명의 소방대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전했다. 런던 소방청 관내에는 총 6000여명의 소방관 중 10%인 500명가량의 여성 소방대원이 있다. 특히 런던은 여성 소방대원도 남성과 똑같은 기준의 체력검정을 통과해야 입직할 수 있다.
|
또 한국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인 불법 주정차도 영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에선 2004년 제정된 화재와 구출 서비스법에 따라 소방관이 화재 진압과 구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재량에 따라 차량 소유주의 동의 없이 차를 옮기거나 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폴 서장은 “긴박한 현장에서 인명구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구조활동에 방해되는 차량을 부서도 소방관은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도 불법 주정차 차량은 소방활동 중에 파손·제거해도 손실 보상을 하지 않는 규정이 지난해 6월 시행돼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행정소송 등을 우려해 아직 차량을 파손한 실제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런던 소방이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로는 의용소방대의 활약도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가 활성화돼 있고 소방관뿐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방 훈련 기관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옥스퍼드 지역에 있는 런던 소방 대학은 61만평 부지에 연면적 200만㎡의 훈련시설과 130여개가 넘는 훈련과정을 갖추고 소방관뿐 아니라 정부 관리, 소방관 준비생, 민간인 등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연간 6000명 가량의 소방 안전 훈련을 진행한다. 런던 소방대학의 말콤 토마스 운영 감독은 “세계 최대 규모의 훈련 시설을 갖추고 재난 상황과 훈련 대상에 맞춘 프로그램을 완비했다”며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온 국민이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