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출산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과거에는 병역회피를 위해 원정출산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녀에게 미국식 교육과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삐뚤어진 자녀사랑이 원정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15일 원정 출산 전문업체 등에 따르면 미국 원정 출산으로 태어나는 ‘앵커베이비(Anchor Baby)는 최소 연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국내에서 태어난 출생아 수(43만 8700명)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원정 출산 전문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 연고를 해외로 떠나는 산모들을 포함하면 실제 원정출산 아동 수는 1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이다.
만삭인 임산부가 여행비자로 떠난 괌이나 하와이, 사이판 등에서 아이를 낳아 미국 시민권 취득하는 게 일반적인 수법이나 미 본토로 직접 원정출산을 떠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원정출산 업체 관계자는 “괌이나 하와이 등 휴양지 뿐만 아니라 미국 한인타운 내 한국계 병원과 산전·산후 조리원 등은 원정 출산 대기자들이 줄을 이을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 병역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정출산이 활용됐지만 지난 2005년 국적법 개정으로 불가능해졌다. 이후 교육과 취업을 목적으로 원정출산에 나서는 산모들이 늘었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다. 미 시민권자가 공립대학에 입학하면 학비 보조나 장학금을 받는데 있어 유리하다.
미국이나 한국 내 외국계 회사들이 직원을 뽑을 때 미 시민권자를 우대한다는 점도 원정 출산을 부추기는 요인중 하나다. 특히 우후죽순 생겨난 원정출산 전문업체들의 경쟁적인 마케팅 탓에 과거 사회 고위층의 전유물이던 원정출산이 서울 강남, 목동 등을 중심으로 중산층까지 확산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수의 부모들이 자식의 미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명목아래 원정출산에 나서고 있다”며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시민사회 의식 가치가 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유학 등을 보내는 것은 자녀 교육에도 바람지 않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앵커베이비(Anchor Baby):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부모가 짧은 기간 원정 출산을 통해 미국 국적을 얻은 아기. 바다에 앵커(닻)를 내리듯 부모가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뜻의 용어로 미국 원정출산을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시아 국가 중산층 사이에서 성행하는 원정 출산, 중남미계 불법 체류자들의 미국 내 출산 등이 이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