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5조80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코레일(옛 철도공사)은 조만간 부채 없는 초우량 공기업이 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것도, 갑자기 철도 이용객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그 비결은 코레일이 갖고 있는 서울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의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코레일이 민간에 매각하기 위해 제시한 최저 판매 가격은 3.3㎡(1평)당 5369만원이다. 전체 부지(10만7000여평)가격은 부채규모와 같은 5조8000억원이다.
코레일이 이처럼 엄청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던 것은 ‘용도변경의 마술’ 덕분이다. 서울시와 협의해 초고층 빌딩과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이 높아지고 용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초 이 땅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이 높아야 250% 정도. 하지만 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바뀌어 용적률이 600% 정도까지 올라가게 됐다. 용적률은 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 비율. 가령, 용적률이 100%인 100평의 토지라면 100평짜리 건물만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용적률이 600%까지 허용되면 600평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어 땅의 가치가 사실상 6배로 치솟는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용도변경이 없었다면 땅값은 3분의 1 정도에 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2005년 뚝섬의 시유지를 3.3㎡(1평)당 7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아 1조1262억원을 챙겼다. 이 땅 역시 서울시가 초고층 주상복합을 짓도록 땅의 용도를 바꿨기 때문에 가격이 치솟았다. 건설업계는 “서울시에 이어 공기업까지 나서 땅 장사를 하는 것은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에 역행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뚝섬 토지에 대해 경쟁입찰을 부치는 바람에 기업 간 경쟁이 불붙어 땅값이 치솟고, 주변 집값까지 올려 놓았다. 코레일도 3.3㎡(1평) 최저 판매가를 5369만원으로 책정, 주변 땅값이 1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땅 장사를 규제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땅 장사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들이 이전 사업비 마련을 위해 수도권에 갖고 있는 사옥 부지의 용도변경을 허용해주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갖고 있는 토지가 무려 300만평이나 된다. 특히 한국전력 등 강남권 요지에 땅을 갖고 있는 공기업들이 많다. 경쟁입찰을 할 경우, 땅값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주변 땅값과 집값이 덩달아 뛸 수밖에 없다. 건설산업연구원 김선덕 소장은 “정부가 땅값을 더 받기 위해 주변 교통여건이나 입지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초고층을 허용할 경우, 교통난을 촉발시키고 도시계획과 경관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