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 예산 구체화
특위가 공개한 1차 의료개혁 안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월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내건 7대 요구 사항 중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를 제외한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전공의 수련 혁신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 등을 모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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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안건들이 이전 논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번엔 기획재정부가 논의에 함께 참여해 구체적인 예산계획이 반영됐다는 점이 크게 달라진 점”이라며 “실행력이 보다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급병원의 체질도 확 바꾼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 비중을 현재 50%에서 3년 내 최대 70%로 올리고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공의 비중을 40%에서 20%로 줄인다. 지역의 거점병원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 서울 큰 병원에 가지 않아도 중증·응급 최종치료가 가능하도록 국립대병원 수술실, 중환자실 등 시설·장비 첨단화 등에 대해 내년 1836억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그동안 국립대병원의 필수의료 투자를 저해하던 총액 인건비와 총정원 규제도 전면 손질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국립대병원은 기타공공기관 지정 예외를 적용한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교수정원을 내년 330명 확대를 시작으로 2027년 1000명까지 확대한다. 지역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권역 거점병원 육성, 교수정원 확대와 함께 내년부터 전문의 대상 계약형 필수의사제를 도입한다. 내년에는 4개 지역, 8개 진료과목(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전문의 96명을 대상으로 월 400만원의 지역근무수당을 지원한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지역 의료시스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을 키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주민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차의료기관부터 강화하는 방안이 아닌 상급종합병원 위주의 정책은 아쉬움을 표했다. 조 원장은 “주치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의원 등을 잘 갖추면 사람들이 무조건 아프다고 응급실을 찾는 일이 줄어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사라지고 대형병원도 진짜 응급·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완을 언급했다.
◇전공의 수련 국가 책임제…소송 부담 줄인다
전공의 수련은 국가가 책임진다. 수련수당 외 수련지원 예산만 올해 35억원에서 내년 3190억원으로 89배 늘린다. 연속수련시간은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주당 수련시간은 80시간에서 72시간으로 단축한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전공의와 전임에게 매련 수련수당 1200만원을 지급한다. 전공의 지도전문의에게도 연간 수련수당 8000만원을 지원해 전공의 밀착 지도를 유도한다.
전공의가 암 수술 같은 중증 진료뿐 아니라 탈장, 충수, 담낭 수술처럼 중소병원에서 주로 다루는 질환과 지역의료 등을 두루 경험하도록 여러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다기관 협력수련 제도’도 내년 시범사업을 통해 첫발을 뗀다.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배상 보험 및 공제 활성화로 고액 배상위험 완화 △대면조사 최소화 △최선을 다한 진료를 보호하는 형사 특례 법제화 등 안전망 구축이 이뤄진다.
노연홍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은 “가능하면 정부의 지원 확대가 전공의의 복귀로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앞으로 전공의들이 복귀를 한다면 개선된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김성근 가톨릭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련에 대해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투자하겠다고 한 부분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전공의나 학생들이 복귀하는 데 영향을 주진 못할 것 같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한편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이미 정부가 대학 입학 시행 계획을 발표했고 단기간 내 의료 여건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의료계가 추계 조정 시스템에 동의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2026년도 정원) 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사단체가 줄곧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 기구에 들어오면 2026학년도부터는 조정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마련한 의사 수급 추계·조정 기구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의협이 참여하든 안 하든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진정으로 참여를 원한다면 (의료계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