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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빴던 광장처럼 주식시장도 급하게 돌아갔다. 1987년 6월10일 코스피는 388.73으로 거래를 마쳐 전날보다 0.5%(1.95포인트) 올랐다. 4.13 호헌조치 때와 비교하면 5.65%(20.82포인트) 상승했다. 6.10 항쟁을 전후한 지수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당일 지수는 한 달 전보다 1.49%(5.73포인트) 올랐고, 한 달 후 19.95%(77.59) 상승했다.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시위는 필연적으로 정치 행위다. 정치는 늘 불확실하다. 불확실성은 증시가 가장 싫어하는 요인이다.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는 위험(주식)을 감수하지 않는 게 돈의 생리다. 그런데 6월 항쟁을 전후한 코스피는 이런 속성을 뒤집었다. 물론 시위가 증시를 끌어올린 인과관계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시위가 증시를 끌어내린 악재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물론 주요 시위 국면에서 코스피는 떨어진 편이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제는 촛불 시위를 정착시킨 평가를 받는다. 시위가 전보다 덜 과격해진 계기였다는 의미다. 그해 6월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둘을 추모하고, 미군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이 겨울 광장을 밝혔다. 9월30일 646.42이던 코스피는 그해 627.55로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2.91%(18.87포인트)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는 굵직한 시위가 두 차례 일었다. 우선 `광우병 사태`다. 정부는 2008년 4월18일 미국과 소고기 수입 협상 내용을 발표했다. ‘광우병 발병 우려 부위까지 수입 대상에 포함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로써 열린 촛불집회는 100일 넘게 지속했다. 5월2일 첫 집회 당일 1848.27을 기록한 코스피는 100일 이후 1568.72로 하락했다. 이 기간 15.12%(279.55포인트)가 하락했다.
이듬해 ‘용산 참사’ 당시도 코스피는 힘을 쓰지 못했다. 2009년 1월20일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시민은 공권력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한 달 동안 코스피는 5.40%(60.86포인트) 내려 1065.95(2월20일)까지 하락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발생한 시위 국면 당시 코스피는 정반대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12일 코스피는 848.80을 기록했다가,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한 5월14일 768.46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 기간에 9.46%(80.3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9일 2024.69이던 코스피는 헌법재판소가 그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2017년 3월10일 2097.35로 거래를 마쳤다. 상승률은 3.58%(72.66포인트)였다.
대통령은 정치의 정점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 인물을 둘러싼 시위는 가장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 두 대통령을 두고 일었던 각각의 시위를, 코스피가 반대로 받아들인 게 흥미롭다. 물론 2004년 시위는 탄핵 반대 측이, 2016년 시위는 탄핵 찬성 쪽이 우세(평가의 문제)한 점에서는 차이점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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