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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캬악~. 사랑 표현이 이렇게 달콤할 수가 있나. 말맛이 있다”(손병호), “박정민 표 로미오의 매력은 구수함?”(문근영), “목숨 건 사랑에 대리만족 중”(배해선), “독특하다. 새로운 버전 탄생을 기대하시라”(서이숙).
짧고 굵다. ‘문근영·박정민 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12월 9일~내년 1월1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의 매력을 묻자 출연진이 쏟아낸 말이다. 올 연말 공연계에 화제작은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 중심에는 배우 문근영(29)이 있다. 문근영은 2010년 첫 연극 ‘클로저’에 나선 이후 ‘줄리엣’으로 6년 만에 복귀한다. 동갑내기 연기파배우 박정민이 상대역 ‘로미오’를 연기한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거머쥔 데 이어 tvN 드라마 ‘안투라지’에 주역으로 출연 중인 충무로 신예다.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400주기도 화제성을 보탰다. 연극·오페라·뮤지컬·발레 등 올 한 해 국내서 리메이크한 셰익스피어 작품만 50여편. 여기에 셰익스피어 고전의 킬러라 불리는 양정웅이 연출을 맡아 ‘연애비극’이란 키워드로 제대로 무대화해 대미를 장식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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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세혁은 ‘울리고 웃기는 사람’이라고 했고, 배우 김소희는 ‘배우와 교신하는 무당’이라고 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영원한 현재적 작가’, 극작가 기국서는 ‘보물창고’, 박근형 연출은 ‘나침반’이라고 칭했다. 모두 셰익스피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전히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묘미는 다양한 변주에서 온다. 400년 넘게 숱하게 공연했지만 여전히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게 공연계의 전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출만 5번째라는 양정웅은 원작의 줄기만 가지고 마음대로 각색하는 연출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작품은 실험 대신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양정웅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중에게 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자 셰익스피어 살아생전 최고의 흥행작”이라며 “셰익스피어가 가진 화려한 수사와 행간에 담긴 언어적 사유 등 운명·사랑의 희·비극적 요소를 잘 살리려고 노력 중이다. 내 작품 중 원작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로렌스 신부 역을 맡은 손병호는 입에 착착 붙는 대사의 ‘말맛’에 주목했다. 손병호는 “첫 키스가 이뤄진 발코니 장면을 보자. 입술을 훔치며 ‘제가 이제 그대의 죄를 짊어진 건가요. 그럼 그 죄를 제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나. 최고의 표현이자 주옥같은 대사”라고 감탄했다.
문근영도 달빛에 사랑을 맹세하는 이 장면을 두고 “가장 아름다워 가장 고민이 된다”며 “셰익스피어 언어의 맛을 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현대어를 쓰는 내게 시적인 문어체 문장은 표현하기 어렵더라. 평소 쓰는 말처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좌’ 손병호, ‘우’ 서이숙·배해선…선후배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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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갑내기 커플 외에 믿고 보는 중견배우가 대거 합류한 점도 인기요인이다. 손병호는 신부 역을 맡았으며, 서이숙·배해선은 줄리엣의 유모 역을 소화한다. 조승우가 눈여겨보는 후배로 알려진 김성철은 로미오의 사촌이자 친구 벤볼리오 역을 맡아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할 예정이다. 머큐쇼 역에는 김호영·이현균이 확정됐으며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 역에는 양승리, 줄리엣의 약혼자 패리스 역은 김찬호가 연기한다.
양 연출도 “첫 리딩 때부터 달랐다. 최강 팀”이라며 “기대가 크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손병호는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위치든 새롭게 보고 모자란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후배에게서 많이 배우고 내가 줄 게 있다면 기꺼이 나눠주려 한다”고 했다. 또 “다들 열심이다. 점점 몰입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배우는 배우구나 싶더라. 그들만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극찬했다.
배해선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줄리엣에게 유모는 아빠·엄마 같은 존재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채찍과 사탕을 동시에 주는 인생의 선배”라면서 “코믹한 서이숙의 유모와는 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호도 “원작의 로렌스 신부보다 가볍게 접근하고 있다. 인생을 다 겪어본 뒤 즐겁게 사는 친구 같은 신부”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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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놓은’ 공동작업·영원한 대주제 ‘사랑’
지금은 원작을 크게 비켜가지 않게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연습하는 단계란다.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출한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20여명 넘게 출연하는 원작과 달리 총 8개 배역만으로 무대를 채운다는 것. 몬테규·테플릿가의 두 부모가 빠졌고,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도 과감히 생략했다.
손병호는 “셰익스피어를 현대까지 공연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보편타당성의 논리가 있다. 인간이라면 꼭 필요한 사랑 얘기다. 어디서도 빠질 수 없는 주제”라며 “나는 왜 지금 그런 사랑을 못 하는지, 뭘 잃었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배우 저마다가 매력을 가지고 집요하고 근성 있게 준비한다. 잘하고 싶어하는 모두의 마음이 느껴져 나는 지휘자처럼 그들의 재능이 셰익스피어 희곡과 잘 어우러지도록 노력할 뿐이다”(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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