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의사들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어찌 이럴 수 있나”라는 질타와 원망을 듣다가도 돌아서면 “내 아들, 딸도 제발 의대만 갔으면…”하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그들 앞에 따라 붙는 수식어도 천차만별이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신(神)의 손,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모르는 냉혈한, 돈만 아는 기술자,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똑똑한 바보…. 환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의사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 규제가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는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연재에 앞서, 지난 26일 토요일 오후 종합병원 의사 5명을 ‘솔직 토크’에 초대했다.
―제가 봐도 ‘이러니 의사가 욕을 먹지’ 싶을 때가 있어요. 환자한테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제대로 안 주는 의사도 있지요. 어깨가 아프다는 할머니께 “나이 들면 다 그래”라고 반말로 툭 내뱉고는 약 처방만 주는 경우도 봤습니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중년 부인에겐 “남편이 바람 피우시나 보죠”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의사 잘못도 있지만 건강보험의 과도한 규제가 환자·의사 불신 불러
―이마가 찢어진 세 살짜리 아이가 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얼굴에 난 상처라 성형외과 의사를 불렀더니 3시간이 지나서 내려온 성형외과 레지던트(전공의)가 “뭐 이 정도 가지고…. 근데 제가 아직 전문의가 아니거든요. 이거 대충 꿰매도 되나…”라고 하더군요. 아이 엄마 보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결국 제가 그 레지던트를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나중에 어떤 의사가 될지 걱정스럽더군요.
―제가 직접 환자가 돼보니 알겠더라고요. 의사들이 얼마나 설명을 안 해주는지. 환자 상태가 어떻다는 건지 한 마디도 없이 이것저것 검사만 하라고 ‘명령’했어요. 뭘 좀 물어보려고 했더니 의사는 벌써 휑하니 사라지고 없었죠. 일반 환자들이 얼마나 답답해 할지 이해가 갔어요.
―의사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단 얘기를 많이 듣지요. 일단 의사라는 길이 한 번 정해지면 곁눈질할 여유나 이유가 별로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대학 때는 한 교실에서 의대생들끼리 같은 공부만 하고, 의사가 되고 나면 병원에서만 살지요. 이후에도 어울리는 사람은 대부분 의사들이고요. 그러다 보면 병원 밖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죠.
―의과대학 시절 “상위 5%나 하위 5%에만 들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었어요. 다수를 따라가기만 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뜻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말이지요. 강의 듣고 시험만 잘 보면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또 유급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에 매달리다 보면 자기 일 외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환자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술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
―환자들도 좀 바뀌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환자가 의사를 때리는 일이 많아요. 최근 우리 병원 여자 레지던트 두 명이 환자 보호자에게 맞아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삼갔으면 해요,
―응급실에선 의사들이 멱살 잡히는 일은 부지기수죠. 경찰이 와도 “의사 선생님이 좀 참으시죠”라고만 합니다. ‘환자는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환자들이 폭력을 휘둘러도 경찰이 관대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레지던트 시절엔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환자들 때문에 가운이 찢어져 5벌이나 버린 적도 있습니다. 넥타이를 잡히면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그때부터 넥타이를 안 매는 버릇이 생겼죠.
환자가 의사 때려도 ‘환자=약자’ 인식 때문에 경찰도 “선생님이 참으시죠”
―의사들끼리는 ‘삼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계속 지켜봤던 직계 가족들은 불만이 없는데 뒤늦게 나타난 ‘삼촌’들이 다짜고짜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많거든요. 일찍 찾아보지 못한 환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의사에게 무작정 화 내고 소리를 지른다고 상황이 나아지나요?
―의사와 환자 간에 불신이 생기는 것은 정부와 건강보험의 과도한 규제 탓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양심 진료’를 못하게 만들죠. 예를 들어 불가피한 개복(開服) 수술을 할 때 낡은 인공 심장박동기도 새 것으로 바꿔 끼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공 심장박동기의 배터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기 때문이죠. 그러면 환자는 얼마 후 또 다시 배를 째고 인공 심장박동기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합니다. 환자가 내 돈을 내고서라도 하겠다는 경우도 있지만, 만일 이들이 아직 폐기할 상태가 아닌 심장박동기를 갈아치웠다고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면 병원측은 손해를 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환자들은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요.
―‘명의’(名醫)라는 말은 없어져야 합니다. 현대의학에 명팀(team)은 있을지 몰라도 명의는 없어요. 어려운 수술일수록 의사 혼자선 안 되죠. 어떤 수술이든 집도의 외에도 마취과 의사, 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검사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합니까. 명의 한 사람이 ‘씻은 듯’ 낫게 해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해요. 명의만 찾다가 치료 적기를 놓치면 그만큼 치명적인 손해도 없습니다.
―아주 큰 수술도 아닌데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심장수술 같은 대수술이라도 성공률이 대학병원보다 우수한 전문병원도 있지요. 대학병원에서는 교육을 위해 인턴·레지던트도 수술에 참가하니까 실제 성공률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 종합병원에선 훈련을 모두 마친 전문의들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하니까 오히려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죠.
―대학병원에 몰리니까 환자들도 서로 피해를 봅니다. 사소한 수술까지 대학병원으로 몰리면 정작 급할 때, 위암 수술 같은 중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몇 달씩 기다려야 하니까요.
―종합병원 의사들도 샐러리맨의 심정을 알 것 같은 때가 있어요. 병원 경영진의 ‘인센티브’제 때문이죠. 환자 많이 보는 의사가 유능한 의사가 되고, 추가 수당까지 더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렵고 위험 부담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기보다는 쉬운 환자를 많이 보면 더 인정 받는 ‘의료 왜곡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중환자실 평가를 환자의 사망률로만 평가하면 의사들은 사망률 높은 위험한 환자를 오히려 피하게 돼요. 의료란 것이 단순히 숫자로만 평가할 일이 아닌데 안타깝습니다.
환자 많아야 유능한 의사? 그러면 쉬운 환자만 고르지 누가 위험한 수술하겠나
―외국계 병원이 국내에 진출하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도 꽤 있어요. 의대 교수처럼 직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냐고 물으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의사 노릇 해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한 환자에게 30분씩 시간을 내서 충분히 설명도 해 주고, 눈물 짓는 환자 보호자의 하소연도 끝까지 들어주는 ‘진짜 의사’가 돼 보고 싶다는 거죠. 모든 의사들의 꿈일 겁니다.
―한국의 의료제도나 수준이 그래도 훌륭한 편이란 걸 국민들이 좀 알아주었으면 해서요. 물론 불편한 점은 많지만, 비용에 비해 의료의 질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굳이 선진국 병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죠. 또 누구든 필요할 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선 되려 선진국도 부러워할 수준입니다.
―의사가 곧 병원이고 의료제도 자체인 것은 아닙니다. 의사도 제도와 사회의 일부이고 저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요. 모든 의사를 ‘허준’의 잣대로만 재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이번 조선일보의 의사가 쓰는 병원이야기 연재를 계기로 의사들이 국민들과 함께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머리 맞대고 보다 나은 의료를 고민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