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두 대선진영에서 내내 논란이 되어오던 일종의 뜨거운 감자들 중 하나였던 전략비축유(SPR)에 대해 드디어 백악관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잠깐 움찔하던 국제석유가격은 이내 백안관을 무시하고 다시 49불 선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애당초 단순한 석유가격의 변동에 대한 안정이 비축목적이 아니기에 논란거리가 되어서도 안될 사항이고 정치집단인 백악관보다는 에너지성의 결단이 중요한 것이고 에너지성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방출할 사항이 못될 것이란 시장의 해석이 보다 존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긴 당장 방출을 지시한다해도 그게 거리의 주유소까지 나오려면 절차상으로 엄청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올 겨울은 아무래도 따스하게 지내긴 어려울 듯합니다.
경제란 것이 참 요상스러워 보는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석해도 그럴싸하다는데 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도이체방크에서 나온 자료를 보며 혼자 재미있어하다가 그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이코노미스트인 토마스 메이어가 강의한 ‘Inflation is dead! Long live inflation!"이란 간단한 자료입니다. 제목부터가 참 코믹하단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현재 또는 향후의 인플레이션 동향에 대한 무슨 논쟁거리라도 시작하려는 표현인가 싶기도 한 그런 제목이지만 사실은 ’King is dead! Long live King!"이란 말에서 따온 것이지요. 신왕의 등극시에 ‘옛왕이 죽었단다. 새로운 왕이시여 천세를 누리소서!’라는 표현이지요. 결국 이제까지는 인플레이션은 죽었지만 앞으로 새로운 인플레이션이 시작하여 위협이 될 것이란 표현입니다.
90년대 들어 지속적인 기업의 재무구조개선(de-leveraging) 노력은 차입을 줄이고 투자에 소극적이 되며 2000년 3분기를 정점으로 기업들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키고 주가를 하락하게 만들고 미국경제를 병들게 만드는 원인이 됐습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사용한 감세와 저금리정책은 민간가계부문의 소득에 비하여 과도한 소비증가를 유도하여 가계부채를 늘리고(re-leveraging), 정부부문 역시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 적자를 급증케하는(re-leveraging) 요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re-leverage 정책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여 주요 선진국들의 가계소비증가와 함께 GDP성장을 이끌어내고 경기침체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치료약이 제대로 먹혔나 싶었지요. 그러나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기회복이란 필연코 인플레이션을 수반하는 것이고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일명 정책수단으로 사용한 재정적자와 아울러 정책결과로서의 경상수지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그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란 근본적으로 화폐현상이고 시중의 유동성이 많으면 발생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바, 90년대 말 전세계적인 생산시설의 과잉이란 문제는 결국 저금리와 함께 기업들을 위주로 과잉유동성문제를 야기하고 이것이 또한 인플레이션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다 장기로는 전쟁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평화기에는 디플레이션을 보이게 되어 월남전 이후 별다른 전면전 내지 장기전이 없는 2000년대는 일단 평화기로 구분되어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경향이 더 강할 수 밖에 없으나 평화기간에도 나름대로의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1달러 1표를 표방하는 자본주의의 갈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구조는 민주주의이며 동시에 자본주의를 추구하기에 이들간의 태생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자본의 사용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에 주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성행할수록 정부지출이 커지고 재정적자를 수반한 인플레이션이 강해지는 반면,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디플레이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0년대 후반부터 세계경제의 추는 자본주의로 흘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2000년도의 세계적인 자산가격의 붕괴를 초래하였으며 이후 다시 민주주의로 중심추가 이동하면서 자산가격의 상승과 공공부문의 부채증가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계적인 고령화문제는 고령인구에 대한 공공지출을 확대하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고 있으며 특히 자산가격의 앙등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노인들은 일반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소비하기 보다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대수명에 대비하기 위하여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단 해석입니다.
결국 최근의 부동산버블 논쟁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사회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입니다. 아울러 이제까지의 채권가격의 상승(금리하락)과 주식가격의 상승도 충분히 예상되었던 전반적인 경제현상이란 것이지요.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면 이러한 요소들 즉, 이미 적당히 상승한 자산가격, 불안정한 경제성장과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적당한 부를 보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예비고령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소비보다는 저축을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하긴 최근 미국금리 인상으로 인해 가계부문의 소비감소와 저축증대가 오히려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하고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고는 하더군요 최근 미국 가계부문의 저축률이 고작 0.5% 수준이었다지요. 이제 금리가 오르면 좀 저축해볼까 한다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할지 참 궁금합니다.
이제 막 자본주의를 마감하고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면 더구나 고령문제가 이제 시작하는 분위기라면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이란 단어가 함께 붙어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 한다던데… 으스스한 괴기담같은 소리지요. (산업은행 런던지점 부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