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네덜란드 '반도체 토털협력'의 힘[공관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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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기자I 2026.03.09 04:45:00

네덜란드, 토털사커 전술로 세계 축구 패러다임 바꿔
ASML-삼전-하이닉스 토털 협력 시스템으로 공급망 안정
지정학적 불안 속 네덜란드와 외교·안보 등 전방위 협력
양국 전략적 동반자로 '토털 시스템' 구축 기대

[홍석인 주네덜란드 대사]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은 1970년대 ‘토털사커’ 전술로 세계 패러다임을 바꿨다.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경기장을 두고 움직이는 네덜란드의 시스템 전술은 특정 스타 선수 기량보다는 시스템의 완성도로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다.

홍석인 주네덜란드대사(사진=외교부)
21세기의 석유라고 알려진 반도체 산업도 축구처럼 소재, 장비, 설계, 제조를 하나의 정교한 생태계로 연결해야 경쟁력이 완성된다. 복잡한 공정과 촘촘한 공급망의 특성상 반도체 산업은 한 나라가 혼자서 완성하기는 어렵다.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 네덜란드와의 토털 협력은 승리를 향한 최고의 방향이다.

풍차와 튤립 들판의 목가적인 풍경과 달리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 보유국이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을 넘어 인공지능(AI)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한국에 있어서 네덜란드가 불가분의 협력 파트너인 이유다. 지난 2023년 12월 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토털 협력 시스템으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ASML,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간에 이미 구축해놓은 유기적인 시스템에 더해 정부 차원에서도 반도체 공급망 안정과 기술협력 파트너임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반도체 대화, 경제안보 대화, 핵심품목 공급망 대화 등 주기적으로 정책 동향을 공유하고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공급망 안정화 협력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2024년 2월부터는 복수의 한국 반도체특성화대학원과 네덜란드 주요 공과대학, 연구기관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매년 100명 이상의 반도체 전공 학생들과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해 반도체 혁신 현장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 외교장관과 통상장관은 지난달 서울에서 ‘제1차 한-네덜란드 2+2 외교·산업 고위급 대화’를 개최했고 이 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반도체 생태계 간 전략적 협력을 지속 강화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아울러 최근 전 세계에 불어닥친 지정학적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양국은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 신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8월 양국 정상이 통화했으며 같은 해 9월 우리 대통령이 주관한 ‘AI 관련 유엔(UN) 안보리 공개토의’에도 네덜란드 총리가 참석하는 등 정상 차원에서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올해 4월 이 지역에 해군함정을 파견할 예정이다.

세계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사이버, 공급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례없는 총체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경기장을 같이 다각도로 심층 해부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20세기 토털사커가 경기장 내에서의 유기적 연결과 협력으로 승리를 이끌었다면 21세기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국경을 넘어선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는 전략적 동반자로 양국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토털 시스템’을 같이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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