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강의 : ‘WarStrategy’ 2강 페르시아 전쟁
넬슨 제독과 함께 서구권의 해군 영웅으로 꼽히는 테미스토클레스
막대한 은 발견에 분배 대신 해군력 강화 주장
외국인 출신인 그를 시민으로 받아준 아테네 민주주의 승리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성웅 기자] 40년 동안 이어진 페르시아 전쟁에서 가장 큰 변곡점으로 꼽히는 전투가 살라미스 해전이다. 살라미스 해전을 지휘한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힌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서구권에서 최고의 해군 명장을 논할 때 영국 제독 호레이쇼 넬슨과 함께 항상 거론하는 인물이다. 그리스의 이순신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 테미스토클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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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출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모친은 아테네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어 원칙적으로 아테네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네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주는 법을 제정하면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포함한 다른 도시 국가들에 비해 민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권 획득을 계기로 테미스토클레스는 민주제에 공감하게 되고, BC 493년 아테네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에 뽑혔다.
그해 아테네 국영광산에선 엄청난 양의 은이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 은을 나눠 갖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30세에 불과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은을 해군 양성에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결국 시민들이 테미스토클레스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아테네는 삼단 갤리선 200척을 보유한 해양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최 교수는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전력가의 귀중한 사유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아테네를 세계 최강의 해양전략국으로 만들었다”며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시스템과 성숙한 시민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워-스트래티지’ 페르시아 전쟁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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