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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18.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이민주 기자I 2017.05.08 06:00:00
일급비밀
이왕 사기꾼들 얘기가 나왔으니 당시 한국 사정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중국 한인 사회에서 국민당 군자금 관련 소문과 숨겨놓은 보물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때 한국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건수들이 비밀리에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중국 사업을 접고 돌아온 후 한국에서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동분서주 할 때였다.

10년 남짓, 그사이 한국 사정, 특히 정치 상황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3김 중 한분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30여 년 가까이 우리 사회를 물들였던 군사문화를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그 같은 시대 정신의 일환으로 육사 동기생인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수의복 차림으로 공개 재판 받은 장면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매스컴에 연일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군인 정신, 대통령의 품격, 대한민국의 국격 등을 따질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현직 대통령도 자신은 물론 대통령 아들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아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무엇이 정상인지 어떤 것이 비정상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21세기를 맞았다.

이때 해외에서 온 한인 사기꾼들과 한국에 사는 ‘타짜’ 앞에 던져진 먹잇감이 바로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이었다.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여기에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들의 비자금이 더해졌다. 바로 이 자금이 스위스 등 일부 유럽 비밀은행에 예금되어 있다는 것. 이 자금은 당초 냉전시절부터 해외 정보활동에 필요한 정보자금으로 반출되기 시작했는데 10 26사태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다음 대통령 몫으로 넘어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럽에 보내지 못한 어마어마한 통치 자금이 국내 모처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우선 유럽은행에 예금된 비자금을 현금화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알프스 산속에 노인 전용 휴양지 개발을 위한 특별목적법인(SPC)를 세운다. 이 법인이 유럽 현지 법인을 설립한 후 노인 휴양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 숨겨놓은 비자금이 유럽 현지 법인에 정식으로 투자된다. 사업을 벌인 후 수익금은 각각 투자한 금액의 2배수를 공제한 후 투자액에 따라 배분한다. 그러하니 서울에 특별목적법인을 세울 자금을 투자하라는 것이 골자다. 독일어와 영어로 그 나라 명칭에 서명까지 한 관련 참고자료까지 있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제안 아닌가? 말대로만 되면 대박이지만 이런 불확실한 사업에 투자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할 소문이었다.

국내에 숨겨져 있다는 비자금 소문을 정리해보자. 국내 정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던 1980년대 초 정부가 당시 통용되고 있던 돈을 바꾸기로 하고 신권을 제작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정책이 변경되어 구권과 신권을 교환할 수 없게 됐다. 구권과 구분이 안 되는 이 신권을 당연히 소각 처분해야 하는데 이 돈을 소각하지 않고 빼돌려 대통령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 돈을 경기도 모처에 있는 몇 개의 컨테이너 박스 속에 숨겨 놓았다. 이 돈을 시중에서 아무도 몰래 현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금화 하는 방법이 아주 간단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모 시중은행 지점을 찾아가 지점장 실에서 자신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다. 그리고 10억 원 단위로 예금을 한다. 예금 후 만 3일이 지난 후 잔액을 확인해 보면 된다. 예금한 액수의 20%가 추가된 자금을 인출할 수가 있다.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다. 4일에 20%씩 남는 장사가 된다? 너무 너무 신기했다.

대통령의 비자금 외에도 몇 가지 그럴듯한 소문이 흘러 다녔다. 가명으로 예금되어 있는 돈을 실명화해야 한다. 입출금을 자주하는 통장에 1억원 이상 예금이 되어 있는 통장을 빌려주면 입출금 액수의 20%를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시베리아 원유 채굴권이 등장하는가 하면 동남아시아 대규모 부동산 개발권, 일본인이 소장하고 하고 있는 국보급 골동품 매입 건 등이 서울 시내 사기 시장에서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다음회 계속>

중국 전문가, 전직 언론인

법정에 선 노태우(왼쪽), 전두환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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