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누가 신용평가 선진화를 방해해왔나

박수익 기자I 2016.09.28 06:18:00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신용평가 선진화 방안. 누군가에게는 협소한 분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신용등급은 자본시장에서 발행기업과 투자자의 정보비대칭을 해소하는 중요 인프라 역할을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적시·적기의 신용평가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2일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며 첫머리에 언급했던 ‘최근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평사가 여전히 기업에 대한 사전적·적시 경보를 못하고 있다’는 대목은 그래서 수긍이 간다. 다만 수긍은 거기까지다. 금융위의 이번 방안은 문제인식이 왜곡됐고 결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번 방안에 대한 핵심 평가는 [신용평가제도 역주행] 기획을 통해 다뤘지만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를 더 지적해 보고자 한다.

금융위원회는 브리핑과 보도자료를 통해 ‘시장에서 고품질 평가를 제공하는 신평사가 좋은 평판을 받고 기업은 평판을 인정받은 신평사에 의뢰하는 선순환이 필요하지만, 신평사 평가 체계가 미흡해 시장에서 평판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금융위의 진단과 달리 고품질 평가를 제공하는 신평사에 기업이 더 많은 의뢰를 하는 선순환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은 따로 있다. 지난 7월28일 공청회에서도 주제발표자가 언급했듯 시장신뢰도와 점유율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것은 발행사 우위구조와 안정적 3사과점 체계가 핵심이고 본질이다.

신평사가 시장에서 신뢰(평판자본)를 얻기 위해선 눈치 보지 않고 엄격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는 신평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발행사 입장에선 기피대상이다. 30년을 이어온 3사과점체계가 안정적 매출과 대주주 배당을 담보해줬기 때문에 평판자본을 쌓기 위한 치열하고도 피나는 노력을 할 동기도 없었다. 선순환은 지금도 나타나지 않는다. 전체 투자등급(AAA에서 BBB 사이)의 97~98%는 똑같고 그나마 2~3%의 등급차이(split) 를 먼저 선보인 곳은 모난돌이 정을 맞듯이 오히려 발행사로부터 의뢰를 받지 못하는 징벌을 당하기도 한다.

금융위가 진정으로 선순환을 기대했다면 지난 시절 방치했던 이러한 현실에 보다 책임있는 문제의식을 가졌어야 하는데 이번에 내놓은 신용평가시장 선진화방안은 제3자의뢰평가를 제외하면 그 어떤 갑을관계 해소방안도 30년 과점체계에 대한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번 방안의 공동책임자로 발행사 이익 대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금융투자협회와 상장사협회를 집어넣고 신평사 역량평가를 아웃소싱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해상충 문제는 외면하고 금융위가 위임만 하면 공신력이 생기는 것이라 판단한다면 관료들의 오만한 발상이다.

뿐만 아니다. 일반기업 독자신용등급을 차기정부로 떠넘기면서 신평사에게 보다 정교한 분석툴로 최종등급과 독자등급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는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선정신청제라는 생소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발행기업에 또 하나의 옵션을 쥐어졌고 신평사 신규진입 논의도 기약할 수 없는 미래로 떠넘겼다. 부실평가를 하는 신평사에 영업정지와 인가취소까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신규진입 논의는 뒤로 미루면서 지금과 같은 3사체제에서 인가취소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예측하란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 가지만 더 묻고 싶다. 올해 금융감독원 여신전문검사실은 자신들이 관할하는 캐피털사 건전성을 우려한 신평사를 불러들였고, 산업은행은 자회사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지 말라고 신평사에 공문을 보냈고, 금투협은 급증하는 증권사 우발채무에 경고음을 울린 신평사를 불러들인 장본인이다. 이들의 행동은 공적기관이었나 이익단체였나. 이들의 행위는 신용평가 선진화에 도움주는 일 인가 방해하는 일 인가. 그리고 언급한 3개 기관을 모두 관할하는 금융위는 그 과정을 목격하며 어떤 고민을 했고 이번 방안에 무엇을 담기위해 노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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