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년은 학생 운동에 가담한 전력 등으로 퇴학을 당해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던 명문대 학생들을 모아 강의 테이프를 담은 학습서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헤임고교학습’은 평범한 ‘촌놈’ 샐러리맨이 출판사업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신화로 남았다. 한 발 더 나아가 학습지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1년치 구독상품인 웅진아이큐가 탄생했고, 이를 발판으로 웅진식품, 웅진코웨이가 잇따라 탄생했다. 90년대말 외환위기 때는 업계 최초로 정수기 렌탈(rental) 시스템을 도입하며 생활가전업계에도 신화를 새로 썼다. 이 청년의 이름은 ‘윤.석.금.’이다.
슬픈 이카루스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욕심 탓입니다.”
채권단과 임직원,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인 윤석금 회장. 건설과 태양광에 발목이 잡힌 웅진홀딩스(016880)가 올해 9월 기습적인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웅진그룹의 화려했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것은 비단 윤 회장 본인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신화를 준비중인 이들에게는 반면교사의 기회다.
금융시장에서는 새삼 교원그룹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이들이 많아졌다. 교육·출판사업으로 출발해 생활가전, 호텔 등을 보유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웅진과 교원의 역사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두 창업자들의 감동적인 창업스토리는 신화 그 자체. 윤석금 회장은 1980년 35세 나이에 설립한 웅진출판(현재 웅진씽크빅(095720))을 발판으로 지금의 웅진그룹을 일궜고, 장평순 회장은 1985년 34세 나이로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을 설립했다. 윤 회장이 ‘샐러리맨의 신화’라면 장 회장은 ‘고시생의 신화’다. 고시공부를 하다가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배추장사를 시작하게 됐고, 배추 팔아 번 돈을 밑천으로 1985년 중앙교육원구원(현 빨간펜)을 열었다.
교원그룹은 이후 생활가전전문기업인 교원L&C를 설립하면서 정수기(웰스 정수기), 비데(와우 비데), 연수기(와우 연수기), 기능성화장품(마무), 한방화장품(고스란히 담을 예) 분야에 진출했다. 교원구몬, 교원 하이퍼센트, 교원 크리에이티브 등 교육 사업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교원의 행보는 웅진과 많이 닮아있다. 바둑을 좋아하는 윤·장 회장이 가끔 만나 대국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두 회장의 친분도 얘깃거리였다. 나이가 조금 더 어린 장 회장이 윤 회장을 멘토(mentor)로 삼고 있다고까지 비춰졌다. 하지만 두 그룹은 어느 시점부터 갈림길을 만난 듯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공격적 사업확장’이라는 갈림길을 만나고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