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그에게 고마워해야할 이유도 있다. 세계은행(WB)에 한국은행 파견자리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자리만 만들었다 뿐인가. 한국은행에 대한 꽤 높은 신뢰를 구축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에서 외화자산 운용 컨설턴트를 역임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의 중앙은행 자산을 일부 맡아 운용하며 컨설턴트이자 세일즈맨이 돼 봤다고 했다. 추 원장은 "저에게는 금전적 이익이 없습니다. 당시 세계은행 소속이었기에 컨설팅 수수료는 그쪽에 귀속됐지요"하면서 허허 웃었다.
추 원장은 한은 사람치고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6년 외화자금실 4급 조사역이었던 그는 벤치마크 개념을 들여오자고 외쳐댔다. 당시 집행간부들도 생소해하던 단어였다. 미국 국채 2년 이하 단기자산 중심이었던 외환보유액 운용의 듀레이션을 확 늘리자고 주장한 것도 그다.
결국 한은은 외환위기 직전 JP모간 거번먼트본드를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한 벤치마크로 도입했고 이를 맞추기 위해 장기채 투자를 대폭 늘렸다. 추 원장은 "그때부터 외환보유액 투자전략이 변화했고 그 덕분에 2000년대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좋을 때 상대적으로 운용수익을 많이 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시장에서 그의 취임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운용 전략에 대한 변화 기대감. 추 원장은 "기본 철학이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 경제의 `라스트 리조트(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기본 철학은 유동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지키면서 기회비용을 고려한 적정 수익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다만 "운용 환경의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해 발전해야한다"고 말했다.
미국, 독일 국채가 안전자산이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안정성과 유동성이라는 기본원칙에도 혼란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 원장은 "지금까지 안정성과 유동성은 대체적으로는 같이 움직였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갈 수도 있다"면서 "과거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화에 대한 시각 역시 변화하고 있음에 동의했다. 그는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과도하게 누리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20년, 30년 후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찾아가고 신흥국 통화들도 빈 자리를 차지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캐나다, 호주, 스위스, 노르웨이를 언급하며 메이저보다는 한 단계 낮은 국가의 통화 쪽으로 다변화되는 것은 지속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단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통화 다변화가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강만수 산업은행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 이 외환보유고 활용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라스트 리조트`로서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추 원장은 "우리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가졌다는 것는 단순한 계산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이익"이라며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이 왔을때 흡수하지 못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외환보유액을 조금 충분한 수준 이상으로 가져가는 게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에 대해서는 극도의 비관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추 원장은 "미국은 일부 개선되는 듯한 지표의 움직임이 있다"면서 "유럽은 더 이상 나빠지기 힘들만큼 비관적인 상황인데, 최악의 상황보다는 유로화 시스템이 유지되는 쪽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그는 외환 보유고 운용만을 생각해온 외곬 인생이 지겹지도 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한다고 했다. "내가 처음 운용에 발을 담갔던 1982년 외환보유액은 10억달러였다. 지금은 3100억달러다. 국제금융은 계속 변화했고 운용환경은 바뀌어왔다. 신입행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더 나은 운용을 생각하고 꿈 꿔왔다." 추 원장은 `진화`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국가 경제 최후의 보루라는 외환보유액. 그의 지휘하에서 운용의 진화를 꿈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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