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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재개발사업이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가꿔온 ‘가족’과 ‘이웃 공동체’까지 파괴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서민들이 살아 온 왕십리. 여름마다 범람하는 청계천 물난리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높은 지대를 찾아 집을 지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비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들이 몰려 살았지만 값싼 방에서 서로 의지하며 미래를 꿈꿔오던 곳이다. 그러나 지난해 재개발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집주인·상가주·가옥세입자·상가세입자 등 공동체를 이루던 구성원들은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13일 찾은 왕십리뉴타운 1구역 사업구역인 긴마루재길 일대. 구불구불한 언덕길에 늘어선 주택과 상가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곳곳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깨진 건축자재와 오물더미가 널려 있었고, 건물 벽 곳곳에는 조합 측과 세입자대책위원회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벽보가 어지럽게 나붙어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골목길에서 만난 황미숙씨(39·여·14년째 거주)는 “애들이 셋인데, 아프면 이웃에서 약도 얻고, 우유가 떨어지면 우유도 얻어오고 했던 곳이 왕십리”라며 “하지만 약을 건네주던 아주머니, 우유 하나 더 챙겨주던 가게 아저씨는 떠나고 없다”고 말했다. 이지연씨(33·여)는 “워낙 인정 많은 동네라 돈 없는 사람들도 10~20년간 마음 편히 살아온 곳이 왕십리였다”며 “그런데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한솥밥 먹던 집 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서 지금은 원수지간이 된 사람도 많다”고 한숨지었다.
황씨는 “세입자 대부분은 조합 측이 법에 보장된 주거 이전비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있는 데다 주변 전셋값이 2배 이상 폭등,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가고 있다”며 “게다가 언제 진행될 지 모를 철거 위협으로 피말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왕십리에서 살고 있다는 이동훈씨(41)는 “이 지역은 서울의 다른 동네처럼 깍쟁이인 사람들이 적다. 다 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재개발이 불거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고 왕십리 토박이들이 갖는 고유의 인정까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합 측이 감정평가액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조합설립 동의서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등 비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황학동 사거리 맛나곱창집에서 만난 백석환씨(71)는 “왕십리 곱창 골목은 지방에서도 올라올 정도로 소문난 전통 먹거리 동네였다”며 “이젠 옛 명성이 사라지고 터무니 없이 적은 보상금 때문에 이사도 못한 채 눌러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1998년부터 한곳에서 영업 중인 백씨는 “10년 전에 권리금 3000만원을 주고 들어와 월 170만원을 꼬박 꼬박 냈고 시설비만도 5000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조합에서는 3200만원만 제시했다”며 “개발은 건축업자와 가진 자들만 배불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을 대표하던 상권도 몰락했다. 왕십리뉴타운 1·2·3구역에서 영업 중인 3000개 업체 중 90%가량은 금형업체들이다. 이 지역은 1950~60대에 성수동·청계천 등과 함께 금형단지를 형성했다. 이후 한국을 세계 5위 금형강국으로 부상시키는 데 일조했다. 금형은 재료구매에서부터 정밀가공·금형제작·제품생산 등 10여개 단계로 분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전문가들끼리 협업을 하는 특징이 있다. 뉴타운은 그러나 금형단지의 해체를 재촉하고 있다. 이미 300여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금형단지에서 만난 박문주씨(44·우일특수강)는 “물건 하나 만들려면 아는 업체 10개는 거쳐 간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하지만 뉴타운 사업으로 문을 닫는 업체들이 생기면서 일감도 줄어들고, 금형단지의 명성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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