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울리는 ‘통장묶기’…AI 판단·전담 인력 법제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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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훈 기자I 2025.12.16 06:30:00

허위 신고·소액 입금 악용에 정상 계좌까지 장기간 동결
지급정지 오적발 인정한 당국, 판단 정확도 제고 방침
AI 기반 판별·통신사·타 금융사 정보 연동 검토
계좌 신속 해제 위해 은행 전담 인력·절차 법제화 논의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서울에서 소규모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지난달 며칠간 가게 문을 열어두고도 사실상 영업을 하지 못했다. 배달앱 정산금과 카드 매출이 입금되던 계좌가 갑자기 ‘지급정지’됐기 때문이다. 은행에 확인해보니 누군가 A씨 계좌로 소액을 입금한 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라며 신고를 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A씨는 “전혀 모르는 돈이 들어왔고 바로 돌려보낼 틈도 없었는데, 그날 바로 통장이 묶였다”며 “식자재 대금 결제와 직원 급여 이체까지 막히면서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급정지가 해제되기까지는 3주 넘게 걸렸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 계좌 지급정지 제도를 악용한 이른바 ‘통장묶기’ 범죄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제도개선에 나선다. 지급정지 판단체계를 고도화하고, 은행권에서 전담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예방책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다은]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통장묶기 제도의 부작용을 사실상 인정하고 제도 전반을 손질할 방침이다. ‘통장묶기’로 불리는 이 수법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금융회사가 즉시 해당 계좌의 자금 인출을 막는 제도의 구조를 노린 것이다. 실제 피싱 피해금이 유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최근에는 소액 입금과 허위 신고를 결합해 고의로 계좌를 묶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좌 하나에 매출과 생활자금이 집중된 소상공인, 프리랜서, 1인 사업자의 피해가 특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급정지 제도는 보이스피싱 차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제도 특성상 오적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제도를 유지하되 정확도를 높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급정지를 통한 선제 차단 기능은 유지하되, 잘못 묶이는 계좌를 줄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당국이 검토 중인 핵심 해법은 지급정지 판단 체계의 고도화다. 금융위는 AI 기반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보이스피싱 계좌 여부를 보다 정밀하게 판별하고, 통신사와 다른 금융사의 정보까지 연동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는 개별 은행이 신고 내용과 계좌 거래 내역을 중심으로 판단하지만, 향후에는 여러 금융사와 통신 데이터까지 결합한 통합 판단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지급정지 이후 절차 개선도 병행된다. 오적발된 계좌가 신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은행 내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해제 절차와 기준을 법·제도에 명확히 반영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현재는 지급정지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 은행별 인력과 내부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구조다. 은행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정상 이용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허위 신고에 대한 대응도 강화된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허위 신고는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처벌 사례가 많지 않아 억지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경찰과의 협업을 강화해 허위 신고를 조기에 가려내고, 통장묶기 악용을 차단할 추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통장묶기를 대행해 주는 조직까지 등장하는 등 범죄 수법이 고도화하고 있다는 점도 당국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금융위는 향후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와 수사기관 공조를 병행해 정상 금융 이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급정지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편 과정에서 금융권의 인력·비용 부담과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이스피싱 차단이라는 공익과 생계형 계좌 이용자의 권익 보호 사이에서 통장묶기 제도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차단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급정지 오적발이 생계형 계좌에 직격탄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정확도와 신속 해제 장치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현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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