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기자가 지난 3일(현지시간) 토요일자로 받아 본 뉴욕타임스(NYT) 신문 1면은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톱기사는 미국의 3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91만6000명에 달한다는 보도였는데요. NYT는 ‘지난해 8월 이후 일자리 최대 폭 증가(Largest Gains In Job Market Since August)’로 제목을 뽑았습니다. 바로 옆에 배치한 기사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발표였는데요. CDC는 “백신을 2회 접종까지 마친 사람들(Those Fully Vaccinated)은 여행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요즘 월가를 넘어 미국 내 분위기가 딱 이렇습니다. 기자는 지난달 31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1차 접종을 받았는데요. 예약부터 접종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져 매우 놀랐습니다. <본지 4일자 美서 화이자 백신 맞아보니…“코로나 퇴치 속도전 실감” 기사 참조> 그 덕에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지난주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했지요. 여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책을 발표했고요. 어떻게든 미국 고용시장은 당분간 활황일 게 분명해 보입니다.
또 하나 체크해야 할 게 올해 1분기 실적이지요.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S&P 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4.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팩트셋 집계를 찾아보니, 1분기 주당순이익(EPS)은 6%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EPS는 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지요. 그만큼 기업들의 실적이 탄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S&P 지수는 지난해 3월 말 저점 이후 지금까지 74% 넘게 올랐는데요. 기자는 최근 월가 안팎의 인사들에게 ‘지수가 이렇게 폭등했어도 실적이 좋으면 그대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지’ 물었는데요. 많은 이들은 “충분히 더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채권 운용 경력이 10년 이상인 한 전직 매니저는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건 맞는다”면서도 “실적 장세에 들어서며 S&P 지수는 4000선을 지지선으로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월가에는 증시 강세론자들이 우위입니다. 기자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
◇희망에 가득 차 보이는 증시
증시가 마냥 좋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변수는 늘 있는 법이지요. 기자는 최근 월가를 충격에 빠뜨린 한 사태를 다시 짚을까 합니다. 바로 ‘아케고스 스캔들’입니다.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펀드로 이제는 너무 유명해 졌습니다.
간단히 사태를 요약하면요. 지난달 26일 금요일 뉴욕 증시에서는 의아하게 느껴질 만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S&P 지수는 당일 3974.54에 마감했습니다. 1.66% 뛰며 4000선에 근접했습니다. 나스닥 지수 역시 1.24% 올랐고요. 그런데 유독 폭락하는 몇몇 주식들이 있었습니다. △비아콤CBS(66.35달러→48.23달러, 27.31%↓) △디스커버리(57.75달러→41.90달러, 27.46%↓) △GSX테크듀(66.75달러→39.01달러, 41.56%↓) 등이었고요. 바이두는 장중에 15%가량 고꾸라졌다가 회복했습니다. 이후 주말을 거치며 특정 펀드가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강제 청산)을 당했다는 루머가 돌았고요. 결국 빌 황의 아케고스로 나타났습니다. 증거금을 내지 못하며 파산 위기에 몰린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UBS, 크레디트스위스(CS), 노무라 같은 굴지의 투자은행(IB)들이 물려 있는 것으로 파악돼 충격을 줬지요. 특정 종목 주가가 폭락한 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아케고스에 빌려준 돈의 손실 위험이 커지자 대규모 블록딜에 나섰던 탓입니다.
|
◇아케고스 스캔들의 시사점은
아케고스 사태의 특징 혹은 시사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아케고스가 주요 IB로부터 돈을 빌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비결인 동시에 이번에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요인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레버리지입니다. 쉽게 말해 빚 지고 투자했다는 겁니다. 아케고스의 투자자금은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 규모였는데요. 투자한 주식의 총가치는 무려 500억달러였다고 합니다. 4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킨 겁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지금 갖고 있는 돈 1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고 합시다. 투자한 종목 올라서 11만원이 됐다면, 수익률은 10%가 되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빚을 내서 50만원어치 주식을 샀다고 하면, 총 주식 가치는 55만원이 되겠지요. 투자금 10만원 대비 5만원을 벌었으니, 수익률은 50%인 겁니다. 빌 황은 레버리지를 10배 안팎까지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때 돈을 빌려준 이들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라는 건데요. 이들이 빌 황에게 돈을 안겨다 준 이유는 간단합니다. 빌 황이 그동안 수익을 낸 만큼 IB들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빌 황의 별명은 ‘돈벌이 천재(agressive, moneymaking genius)’일 정도였다고 하지요.
아케고스가 레버리지의 마법을 부린 건 총수익스와프(TRS), 차액결재거래(CFD) 등의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서입니다. TRS는 IB 등이 총수익 매도자로서 투자자, 다시 말해 아케고스 같은 총수익 매수자 대신 기초자산인 주식을 매입하고, 그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투자자에게 귀속하는 파생금융상품입니다. 계약을 맺은 IB는 그 과정에서 투자자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것이고요. 아케고스는 이를 통해 최대 10배 가까운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CFD 역시 TRS 거래의 일종입니다. 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진입 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매매 차익)만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계약인데요. 이를테면 A사 주가가 10만원인데, 20만원으로 오를 것 같다고 한 투자자가 예상한다고 하면요. 이 투자자는 IB에 증거금으로 10%인 1만원을 넣고 IB가 대신 주식을 10만원에 사들이는 식의 CFD 계약을 맺습니다. 만약 예상대로 A사 주가가 20만원이 될 경우 IB는 주식을 매각하고, 이 투자자는 10만원을 회수하는 겁니다. 1만원을 투자해 10만원을 버는 셈이지요.
문제는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이 몇 배는 뛰는 레버리지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손실을 볼 때는 똑같이 몇 배를 본다는 점입니다. CFD 계약을 그대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만원짜리 A사 주식이 5만원으로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지요. 이 IB는 주가가 10만원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추가 증거금을 계속 요구할 겁니다. CFD 계약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낙폭이 커진다면 IB는 반대매매(고객이 빌린 돈을 약정 만기 내에 변제하지 못할 경우 강제 처분하는 매매)에 들어가겠지요. 이번 아케고스 스캔들이 이렇게 발생했습니다.
◇레버리지+집중투자=아케고스
두 번째는 빌 황 특유의 집중투자입니다. 분산투자가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집중투자가 꼭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확신이 생긴 종목 몇몇에 투자해 큰 돈을 버는 것도 투자의 기술입니다. 한때 월가 IB들의 리스크관리 부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빌 황이 재기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집중투자 덕이었고요.
하지만 고수익에는 고위험에 따르게 마련입니다. 레버리지에 집중투자까지 더해진 투자 방식은 월가 내에서도 위험한 것으로 손꼽힙니다. 이번 아케고스 사태는 이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고요.
세 번째는 아케고스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패밀리 오피스라는 점입니다. 아케고스는 사실 이전까지 베일에 싸인 펀드였습니다. 도드프랭크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헤지펀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해야 하는데요. 거래 기록 역시 당국에 제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패밀리 오피스는 굳이 거래 기록을 공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근래 미국 금융당국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2, 제3의 아케고스가 줄줄이 나타나지 않을지 하는 겁니다. 금융 부문에서 위기라는 건 ‘시스템’을 건드릴 때 나타나는 겁니다. 이번 아케고스 사태 때 초대형 IB들의 돈이 한 패밀리 오피스에 물려있다는 점에 놀란 투자자들이 많았을 겁니다. 월가에서는 2019년 기준 패밀리 오피스가 굴리는 자산이 6조달러에 달한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번 사태가 번져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비롯한 고위인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
◇아케고스 충격, 계속 이어질까
그 다음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겠지요. 아케고스 사태의 여진은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주가를 보면, 아케고스 사태만 놓고 봤을 때 일단락됐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블록딜 대상으로 알려진 비아콤CBS, 디스커버리 등의 주가는 이제 안정세를 찾았고요. 가장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CS, 노무라의 주가는 폭락을 멈췄습니다. 마진콜은 곧 패닉장을 뜻하는데, 일단 아케고스 사태의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빚투 경고등’이 아예 꺼진 건 아닙니다. 팬데믹 이후 뉴욕 증시는 그야말로 초호황이었지요. 그런데 올해 들어 기관들과 개인들이 빚을 내서 무리한 투자에 나섰다는 징후들이 너무 많이, 또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게임스톱 사태 당시 멜빈캐피털 같은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본 건 큰 맥락에서 아케고스 스캔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빚을 내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 때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서는 건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일입니다. ‘부채’라는 말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저 가치중립적이라고 기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누적된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예상치 못한 주가 폭락에 취약해질 수 있고, 이런 사례들이 쌓이다 보면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멜빈, 아케고스 같은 사례들은 더 나온다고 가정하고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뉴욕 증시는 지난 1년간 역사적인 파티를 즐겼고, 또 더 즐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자는 아케고스 사태 같은 위기가 또 올테니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수 타이밍과 매도 타이밍은 신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빚을 내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증시 지수 수준이 역사상 최고점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고 빚 내서 투자한 이들이 많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는 점은, 투자 때 검토해야 할 사항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