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비건 오고·文 중재에도 “대화 없다”는 北…한반도 정세 먹구름

김미경 기자I 2020.07.08 06:00:00

南 “오지랖”·美 “안봐” 비건 방한날 ‘찬물’
연이은 담화 북미회담 거부 입장 재확인
문대통령 중재역할에 ‘참으로 가관’ 비꼬아
비건 선물에 따라 북한 입장 변화 있을듯

[이데일리 김미경·정다슬 기자] 남북·북미관계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북한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일에 맞춰 ‘대화 거부’ 메시지를 한국과 미국에 발신하면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 반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미사이 중재 역할을 자처한 데 이어 외교안보라인까지 교체하며 남북관계 돌파구를 모색하던 문재인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7일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담당하는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후 오산 공군기지로 입국해 사흘간 한국에 머문다. 비건 부장관은 8일 오전 강경화 외교장관 예방을 시작으로, 조세영 제1차관·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대북문제 관련 연쇄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을 나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북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공교롭게도 이날 마침 비건 부장관의 방한일에 맞춰 담화를 냈다. 권 국장은 담화에서 “다시 한 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사람들과 마주앉을 생각이 없다”며 북미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4일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힌 지 사흘 만에 거듭 대화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권 국장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잠꼬대’, ‘참으로 가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삐치개질(참견질)을 그만하라’고 중재 역할론을 비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대화와 협력에 무게를 둔 외교·안보 진영 인사를 단행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힘써왔다. 특히 북한이 비난해온 대북논의 창구인 한미워킹그룹 개선방안을 꾀하는 등 정세 반전에 노력했지만 북미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대화 재개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전날 비건 부장관의 방한 일정을 공개하며 “북한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조율을 추가로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이 FFVD를 공식 언급한 건 11개월 만이다. 북한은 FFVD를 ‘리비아 모델’로 여기며 수용불가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온 만큼, 사실상 이번 방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비건 부장관이 북한에 어떤 ‘당근’을 내놓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뀔 여지는 남아있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미국이 ‘스몰딜’에 관한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영변+알파’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낮은 수준의 추가 조치를 수용할 경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북한을 견인할 수 있는 담대한 협상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정상 회담이든 실무 회담이든 대화 재개는 당분간 어렵다”고 봤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일축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삼간 것은 협상을 앞두고 미측 입장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진행 여부를 보고 입장을 정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측은 비건 부장관 방한 기간 이뤄질 한미 간 협의 결과에 따라 북측이 요구했던 한미군사연습 등 적대시 정책 내용에 관한 요구가 충족되면 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착륙해 있다(사진=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탑승한 비행기가 7일 경기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의 접견을 위해 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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