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형사보상법)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씨 청구를 받아들여 1년간 옥살이한 이씨에게 정부가 3700여만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어 법원은 형사보상법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받은 이씨의 실명과 거주지, 간통죄 무죄판결 사유 등을 관보에 게재했다. 이 씨는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고 법원에 삭제를 요구했지만 법에 명시돼 있는 사항이어서 불가능했다.
간통을 저질러 실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 간통죄 폐지 이후 재심을 신청, 무죄판결을 받은 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대가로 형사보상금을 받아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현행 형사보상법은 억울하게 옥살이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의무적으로 관보에 실명 등 개인정보와 무죄 판결 사유를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통죄 무죄 판결을 받아낸 사람들 또한 형사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과거 저질렀던 간통 사실을 전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권보호 차원에서 형사보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 결정에 간통죄 재심 청구 줄이어
간통죄 재심 청구인의 신상이 드러나는 문제는 지난해에도 한 차례 논란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2월 간통죄를 위헌 결정한 뒤로 법원에는 간통죄 재심 청구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 한 해 동안 간통 재심 청구로 무죄를 받은 사람은 285명이다. 올해에도 지난 5월까지 44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간통죄 재심 청구인들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법원이 개정 전 형사소송법 440조에 따라 청구인 실명과 재심 사건 내용 등을 관보에 게재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이 조항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면 청구인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관보와 법원 소재 신문에 공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간통을 저질렀던 재심 청구인들은 개인정보와 사건 내용을 관보에 게재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작년 10월 간통 재심 청구인 신상과 사건 내용을 관보에 게재하는 것은 대상자가 원치 않는 내용이 드러나는 만큼 인권 침해라고 판단, 법무부에 법조항 개정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올해 5월 재심 청구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무죄 판결 내용과 개인정보를 관보에 게재하지 않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했다.
형사소송법이 개정됐지만 생각지도 못한 다른 법규정이 간통죄 재심 청구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형사보상법 25조에 따라 재심 청구로 무죄를 받은 사람이 형사보상금을 신청하면 유죄 판결로 구금됐던 시기 등을 고려해 변호사비와 여비, 일당을 보상해준다. 법원은 법에 따라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이 확정되면 2주 안에 보상결정 요지와 보상대상자의 실명, 거주지 등을 관보에 게재한다. 26일 현재 전자관보에 게재된 간통죄 형사보상금 지급 사례는 9건이다.
재심에서 간통죄 무죄판결을 받아낸 사람들이 329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해 형사보상금 청구를 포기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보에 게재된 내용은 삭제나 수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 관계자는 “무죄를 받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돕기 위해 관보에 게재하도록 형사보상법을 만들었다”라며 “법원이 이 법률에 따라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 후 관보에 게재하는 상황이라 법 개정 전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무 관계자는 “관보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려면 안행부에 정정공문을 보내야 한다”며 “그러나 게재된 내용이 잘못된 경우를 전제한 규정이어서 단순 개인정보 침해 등을 이유로는 삭제나 정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과거 형사소송법 개정 사유를 감안할 때 형사보상법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침해 논란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했는데 형사보상법 조항 때문에 간통 재심 청구인이 비슷한 방식으로 인권침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 만큼 검토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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