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와 미인대회의 상관관계

오현주 기자I 2016.01.27 06:17:00

행동경제학자가 본 인간심리
전통경제학 '합리적 선택' 의문
충동·착각…비이성적 행동 탐구
'할인·쿠폰' 이끌려 물건 사고
저평가주식에 몰리는 행태 이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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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리처드 탈러|628쪽|리더스북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 ‘똑똑한 여자’가 가구점에 쇼핑을 나갔다. 얼마 전 이사한 아담한 원룸에 들일 2인용 소파를 찾고 있다. 때마침 눈에 박히는 물건이 보였다. 종류도 다양해 1인용 30만원, 2인용이 40만원, 3인용 50만원짜리를 다 갖췄다. 게다가 때마침 세일까지 한다지 않나. 사이즈에 상관없이 모두 25만원. 그때부터 똑똑한 여자에게 보이는 것은 소파의 사이즈가 아니라 오로지 가격표다. 덥석 3인용 소파를 사버리고 말았다.

2. ‘똑똑한 남자’가 흥분을 했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한 철물점이 눈삽의 가격을 1만원이나 올려 받았기 때문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2만원이었던 눈삽이 하룻밤 새 3만원이 돼버리다니. 애꿎은 철물점 주인에게 버럭 화를 낸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 날 아침에 눈삽의 가격을 올린단 말입니까.”

여자와 남자의 공통점은 ‘똑똑한 것’. 좀더 풀어 경제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앞서 본 경우는 상식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들여놓을 공간보다 큰 물건을 사서는 안 된다는 사실쯤은 코흘리기 때 깨우쳤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면 눈삽보다 더한 물건의 가격도 오를 수 있다는 경제이론 따윈 지식으로 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여자와 남자는 이성이 채 붙잡기도 전에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을 했다. 이를 어찌 해석할 것인가.

혹시 7년 전 출간돼 국내서만 40만부가 팔린 ‘넛지’를 읽은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사람의 경제논리가 딱 부러지지 않으니 ‘옆구리를 쿡 찌르는’ 가벼운 힌트로 현명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2달러 가치의 보험에 20달러를 내는 사람이 보인다는 행동경제학이었다. 이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무기를 들고 저자 리처드 탈러가 돌아왔다. 바로 그 ‘똑똑한 여자와 남자의 어이없는 선택’을 해명하기 위해서다.

이번엔 좀더 탄탄한 논리구조를 갖췄다. 행동경제학의 형성·전개, 핵심개념, 발전방향 등을 그가 직접 경험하고 취합한 회고록 형식으로 선뵀다. 출발은 1970년. 행동경제학이 태동한 당시부터 40여년간 줄기차게 주목해온 ‘아무리 똘똘한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를 규명하려고 했다. 부딪치는 건 당연히 전통경제학이다. ‘누구나 최적화 작업을 거쳐 선택을 한다’가 그들의 모토 아닌가. 그 경제모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을 탐구하겠다고 덤볐으니.

어쨌든 저자의 작업은 전통경제학의 지향과는 반대로 갔다. 그들이 별로 중요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인간의 욕망, 충동, 착각 등을 가운데로 끌어와 ‘똘똘한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할까’, 특히 경제학적으로 ‘왜 그런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가’를 분석하는 데 골몰했다.

▲투자는 이성이 아니다 헛된 예측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 있다. 어리석은 몇몇 행동으로 시장을 뒤집을 수 없다는, 그만큼 강건하다는. 혹여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돈으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다른 현명한 이들이 그들과 반대되는 거래로 가격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여기까지는 전통경제학자의 판단이다. 이른바 효율적 시장 가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로 딴죽을 거는 쪽이 있으니 행동경제학자다.

저자가 찾아낸 ‘최고의 주식을 고르는 방법’은 1930년대 남성이 지배했던 런던금융시장에서 쉽게 발견되던 일종의 ‘시합’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수많은 사진 속에서 최고의 미인을 고르는 대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가령 이 대회의 룰이 참가자 전체의 평균적인 선호에 가장 가까운 미인사진을 조합한 사람에게 우승을 안기는 거라고 하자. 우승을 하려면 참가자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예쁜 얼굴이 아니라, 다른 경쟁자의 호감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얼굴이어야 한다. 결국 참가자는 서로가 판단하는 일반적인 관점이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일에만 정열을 쏟게 돼 있다는 거다. 물론 그 결정은 한번에 끝나지 않고 점점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그런데 주식을 사는 일이 이와 다르지 않더란 말이다. 투자자는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주식을 사고자 한다. 바꿔 말해 투자자가 생각하기에 ‘다른’ 투자자가 그 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이후에’ 판단하게 될 주식을 사려 든다는 뜻이다. 마치 미인대회에 우승할 여성을 점치는 것과 같이. 그러니 진짜 미인을 향한 ‘야성적 충동’을 접고 우승자를 골라내듯 시장이 지금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주식만 계속 싸안게 된다.

▲‘거짓된 만족감’에 지갑을 연다

‘멍청한 행동’은 두뇌집단을 자칭하는 조직도 다르지 않단다. 은행이 현금자동입출금기를 권장하려고 오프라인지점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1990년대 미국서 가장 큰 은행이던 ‘퍼스트시카고’는 3달러 수수료 때문에 수많은 고객을 잃어버렸다. ‘정직한 정가제’를 실시하겠다고 쿠폰·할인을 없앤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결국 동일한 가격이었지만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매기고 다시 할인한 다른 매장 앞에서 지갑을 열었다.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달콤한 회유에 한없이 약해지는 것 역시 인간이다. 때로는 ‘할인’ 문구가, 때로는 ‘아무개’의 입소문이, 때로는 ‘한번 손에 쥔’ 애착에 통째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실체가 없는 ‘거짓된 만족감’에 기꺼이 혹하는 것이다. 이 형편을 이해하지 못한 전통경제학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이론’이란 대중의 불만을 수십년째 뒤집어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셈·뺄셈으로 구제 못하는 시장을 위해

저자는 전통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을 시각적으로 구별하기 위해 각각 ‘이콘’(호모이코노미쿠스)과 진짜 ‘인간’을 끌어내 비교하는 이분법을 썼다. ‘이콘’은 정확한 판단과 대용량 기억력, 돌 같은 의지를 발휘한다. 관심은 오로지 최적화뿐. 이에 비해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설사 그가 경제학자일지언정 기회비용과 빠져나가는 돈의 아귀를 맞추는 데 전전긍긍이다. 컴퓨터 같은 ‘이콘’의 욕망과 선택은 일치할 수밖에 없다. 행동경제학에선? 불가능하다. 유혹에 손을 내미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인지상정’이니.

어차피 이 두 부류의 조화는 틀려먹은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방법은 없는 건가. 아니다. 있다. 경제학의 축에 이성적 ‘이콘’과 더불어 예측불허의 ‘인간’을 함께 세우면 된단다. 전통경제학이 말하는 ‘모든 경제행동은 합리적’이란 전제를 내버리고 좌충우돌의 인간을 포함한 경제모형을 고안하란 얘기다. 덧셈과 뺄셈만으로 시장을 구제할 순 없다. 경제에는 ‘가성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름신’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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