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12일자 22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종종 꺼내는 자랑거리 중 하나는 ‘세수 추계 오차가 적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세수를 잘못 추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우리는 그런 실수가 없다는 너스레다.
실제로 지난 11년간 국세예산과 실제 거둬들인 세수 간의 평균 오차율은 2.2%에 불과하다. 2007년에 세수가 예산보다 14조원 넘게 거쳐 9.6%의 오차율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세수 추계 오차는 매우 적은 편이다.
재정부는 회귀분석식 세수 추계 모형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이런 모형보단 사람의 ‘감’이 더 적중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통계적으로 똑 떨어지는 정확한 추계란 없단 얘기다.
이런 배경에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국세청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정부 관계자는 “다 비결이 있다”고 웃음을 짓는다. 특히 경기둔화로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올해 같은 해엔 세무조사를 강화하거나 평소 신경을 안 썼던 분야의 과세기준을 정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세수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 대기업 세무조사…정권 말엔 더 심해
삼성전자, LG전자는 공교롭게도 정권 말 때마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7년 11년 만에 전격적으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후 ‘세무조사 4년 주기’를 적용받아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조사를 받았다. LG전자는 2007년 조사를 받은 후 ‘세무조사 5년 주기’를 적용받아 지난 4월부터 조사가 시작됐다.
국세청에선 연 매출 5000억원 이상 대기업 세무조사 주기를 작년 4년에서 올해 5년으로 늘린 만큼 원칙대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세무조사를 두고 세수여건이 좋지 않아 세수를 더 확보하려는 조치이거나 정권 말 군기 잡기가 아니냐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SK 건설, 기아차, 삼성엔지니어링 등도 조사하고 있다. 2007년 말에도 LG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현대건설, 포스코건설이 조사를 받았다.
정권 말엔 법인 세무조사를 통해 부과한 세금도 다른 해보다 많다. 2007년은 법인 세무조사로 4조원 가까운 세금을 부과해 최근 10년 중 액수가 가장 컸다. 최근 세무조사를 마친 삼성전자가 5000억원 가량을 추징당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과세권 종료될 때마다 팔 걷어붙인다
세무업계에선 ‘국세부과 제척기간’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국세부과 제척기간은 국세청이 납세자에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기간으로 이 기간이 지나면 세금을 거둘 수 없다. 일반적으로 5년이다.
국세청이 몇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 기간이 끝날 때쯤 세무조사를 하거나 지금까지 낸 세금이 잘못됐으니 다시 내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올해는 대기업 본사가 해외 자회사의 대출 지급보증을 서면서 받은 수수료에 대한 세금이 문제가 됐다. 이 수수료에 대해선 2006사업연도부터 과세했는데 국세부과 제척기간 5년이 되는 올해, 국세청은 갑자기 그동안 수수료가 적게 부과됐다며 2006~2011년 사업연도의 관련 세금을 더 내라고 통보했다.
해외 자회사가 현지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릴 때 국내 본사가 보증하면 더 낮은 대출금리를 적용받게 되는데 해외 자회사는 이 대가로 지급보증 수수료를 본사에 지급한다.
국세청은 본사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이 수수료를 일반 거래에서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받았다고 보고 있다. 과세가 현실화되면 수천억원의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수 확보엔 도움이 되겠지만, 과세권 종료시점을 앞두고 갑자기 5년 치 세금을 다시 내라는 조치는 납세자에겐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다. 현대자동차 등 20개 대기업은 불복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