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지난 15일 밤 9시 50분(한국시각 16일 오전 10시 50분)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자 미국 뉴욕의 그랜드센트럴역에 도착한 김종훈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의 휴대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발신지는 서울이었다. "김 본부장은 서울로 돌아오지 말고 내일 미국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가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3차 협상을 하라"는 청와대의 지시였다.
김 본부장은 그랜드샌트럴역에서 곧장 뉴욕의 존 F. 케네디(JFK) 국제공항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뉴욕의 한국대표부로 들어갔다.
김 본부장이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협상을 중단하고 이날 오후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열차 안에 있을 때 김 본부장이 서울로 돌아온다는 급보를 전해 들은 청와대가 부랴부랴 나서 김 본부장의 서울행을 일단 막은 것이다.
청와대는 외교부가 16일 오전 10시 10분쯤 김 본부장이 협상을 중단하고 서울로 급히 귀국한다는 발표를 한 지 1시간 40분이 지난 이날 오전 11시 40분쯤 "김 본부장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더 머물며 미국과 추가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김 본부장의 귀국에 따른 파장 진화에 급급했다.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과 워싱턴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급히 가동해 미국으로부터 "16일 오후(현지시각) 김 본부장과 슈워브 대표의 만남을 한 차례 더 갖자"는 답을 끌어냈다.
청와대는 김 본부장이 추가 협상을 중단하고 빈손으로 서울로 돌아왔을 때의 파장, 이른바 '국민적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떻게든 김 본부장으로 하여금 미국에 더 눌러 있도록 미국과 급하게 조율했다는 설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만나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들여오지 않을 것"이라며 김종훈 본부장으로부터 '낭보'가 곧 날아들 것임을 내비쳤던 차에 김본부장의 급거 귀국이란 '협상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추가 협상의 근본 목적인 '촛불의 진화'는 고사하고 촛불에 기름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경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서 한국에 오지도 못하고 뉴욕과 워싱턴을 왔다갔다하는 김종훈 본부장의 言行(협상 결과)에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본부장의 빈손 귀국이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를 미국에 체류하도록 하여 성과를 내고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다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본부장의 빈손 귀국이나 낮은 수준의 타협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으로 일본과 대만의 쇠고기 시장의 빗장을 풀겠다는 미국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될 것을 미국이 우려했다고 한다.
"미국은 김 본부장이 귀국길에 올랐다는 한국 정부의 말을 듣자마자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준비하고 슈워브 대표에게 급히 연락해 16일 오후 세 번째 협상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이 과정에서 김 본부장이 일종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이용해 미국이 한발 물러서도록 압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 한 미 FTA협상 대표는 김 본부장을 가리켜 "전략·전술을 적절히 사용하는 통상 전문가"라고 추켜세우기도 한적 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서로 의도에 따라 김 본부장의 귀국행을 멈추게 했으나 우리 측이 원하는 대로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한국의 요구대로 30개월 이하 미국산 쇠고기 수출증명제를 들어줄지가 주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쇠고기 추가 협상은 연장했으나 앞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