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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법 개정안 부결 ‘파장’…“다수가 본인 의사 분명히 전달”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정부와 국회, 전력산업계에 파문이 일었다. 국회 상임위(산자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변이 없는 한 통과되는 게 관례였으나 이게 깨졌다. 국회의원 203명 중 61명(30.0%)이 반대하고 53명(26.1%)이 기권했다. 찬성표는 89명(43.8%)으로 과반에 못 미쳤다.
한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전은 당장 내년 3월부터 한전채 발행이 막히고 채무불이행(디폴트)위기에 빠진다. 국가 전력망이 디폴트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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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의원은 이 같은 해석을 부정했다. 본회의에선 통상 상임위의 결정을 존중해 웬만하면 찬성, 이견이 있어도 기권하고 마는데 이번엔 다수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게 그 근거다. 그는 “의원들이 내 말에 혹했다거나 의미를 몰라서 부결됐다고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 다수 의원은 기권도 아닌 반대표로 분명히 본인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전 정상화 계획 없인 빚 한도 늘려도 내년 중 자본잠식 위기”
양이 의원은 그만큼 현 한전 재무위기가 심각하다고 했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 당장 급한 불도 꺼야 하지만, 이에 앞서 전기료 현실화를 통한 한전의 재무건전성 정상화 계획을 당장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난 빚이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한전의 상황은 역대 최악이다. 올 3분기까지 21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연간 최소 30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매출의 절반 남짓이 적자다. 증권사는 이 추세라면 한전이 내년에도 12조~13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발 세계 에너지 위기로 발전 원가는 평소보다 2~3배 뛰었는데, 전기료는 올해 누적 약 15% 올리는 데 그쳤다. 그 부족분은 한전이 한전채 발행량, 즉 빚을 늘려 메웠다.
발행 한도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량 확대는 국내 채권시장의 돈을 빨아들여 기업의 자금난을 부추기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강원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 경색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양이 의원은 “올 초부터 계속 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얘기해 왔으나 충분한 대책이 이뤄지지 않아 왔다”며 “일각에선 한전채 한도를 늘리면 전기료를 안 올려도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면 한전은 껍데기만 남고 다른 기업이 줄도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진 않았다. 올해도 전기료를 약 15%(1㎾h당 19.3원) 올렸다. 특히 대기업은 20% 이상(1㎾h당 28.5원) 올렸다. 1970~198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최대 폭 인상이다. 이와 함께 민간 발전사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2월부터 도매 요금 상한제를 도입하고 전 국민적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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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부결 후 정부·한전 재정정상화 수립 ‘속도’
한전법 개정안 부결과 재추진 과정에서 정부와 한전도 재정정상화 계획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국회 산자위에 이 계획을 제출했고 오는 20일께 이를 반영한 전기료 (발전)연료비 조정단가를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다.
결과적으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이번 한전법 개정안 반대표는 표 떨어질까 전력 시장 정상화에 머뭇거리던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 시장은 정치권의 이 같은 변화를 반겼다. 한전 주가는 국회 본회의 부결 당일인 8일 주당 1만9350원에서 16일 2만1650원으로 11.9% 올랐다. 특히 부결 다음 날인 9일은 8.5% 급등했다. 시장은 한전의 디폴트 우려보다 전력시장 정상화 기대에 힘을 실은 것이다.
양이 의원은 “에너지 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누르는 건 그 빚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것”이라며 “국민이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을 이해 못 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계산하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가 이하의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건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사람에 대한 사실상의 부자 감세”라며 “에너지 가격은 제대로 받고 전기료 인상으로 타격을 받을 에너지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해선 그 피해액을 산정해 정부 재정에 반영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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