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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사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혁신을 위해서는 공무원들에게 ‘징계’가 아닌 ‘상’(賞)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수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닌 실수한 기록마저도 축적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혁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양 원장은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고졸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한 후 2014년 고졸 출신 여성으로는 최초로 임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6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정치에 입문해 당 최고위원 겸 전국여성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지난 8월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됐다. 취임 갓 100일을 넘긴 양 원장을 11일 이데일리가 만났다.
◇인재개발원 1호 ‘퍼스트펭귄상’ 선발…부상은 CES 참관
30여년간 마하 속도로 변화하는 IT업계에서 근무하다 공직사회의 교육을 담당하는 인개재발원장으로 온 양 원장은 가장 먼저 ‘필요 없는 일’과 ‘필요한 일’을 나눴다. 각 부서에 하지 않아도 될 일 목록을 3개 이상씩 제출하라고 지시해 그동안 각종 회의와 현안보고 때마다 으레 요구했던 종이보고 등 납득이 가는 일들은 그 자리에서 과감히 없앴다. 반면 식당부터 각 부서에 이르기까지 인재개발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에 대한 매뉴얼을 제작했다. 비교적 간단해보이는 식당에서도 생선 다듬는 법부터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 법까지 실무자들의 노하우가 집약된 107가지 업무 매뉴얼이 탄생했다.
“공직사회는 누가 무슨 실수를 하면 ‘누가 책임지고 옷을 벗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실무자를 징계하기 전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업무 매뉴얼이 없다면 실무자가 아닌 리더의 잘못입니다. 리더는 항상 현재 갖춰진 체계에 오류가 없는지 살피고 직원들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일할 수 있게끔 제도화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임자가 한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넘어가는 문화는 민간기업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양 원장은 이처럼 모든 업무를 시스템에 의해 체계화하는 한편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책임자를 찾아 징계하는 방식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한 직원에게 ‘퍼스트 펭귄’ 상을 주는게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퍼스트 펭귄이란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를 내 먼저 도전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참여의 동기를 유발하는 선구자를 가리키는 말로 양 원장은 삼성 재직시 퍼스트 펭귄상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자평한다.
이에 인재개발원은 올해 연말 1호 퍼스트펭귄상을 자체 선발할 계획이다. 부상은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IT 가전 박람회인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양 원장과 함께 참가할 수 있는 티켓이다. 양 원장은 삼성에서 나온 이후에도 자비를 들여 CES를 꼭 챙겨왔다.
“스마트시티부터 5G, 인공지능(AI), 미래자동차, 주거 산업변화 트랜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행사는 CES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인재개발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꼭 봐야합니다. 예산 때문에 어렵다고요? 자비를 털어서라도 다녀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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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개발원의 교육과정 역시 대대적으로 뜯어 고칠 계획이다. 특히 ‘쉬러 간다’는 인식이 팽배한 공무원 교육과정을 인사와 연계시킨 인재개발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그는 “삼성은 인력개발원이 컨트롤타워로 각 사의 인사부서와 연계를 통해 정말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 교육을 받고 그 결과가 적절한 인사로 이어지는 삼성리더십파이프라인(SLP)이 구축돼 있지만, 공직사회는 교육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교육생을 모집해도 모집이 잘 안 된다”며 “교육과 인사를 밀접하게 연계하는 ‘공직리더십파이프라인’(CLP)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 역시 단순 지식전달 방식이 아닌 70~80%를 참여와 체험으로 구성하고 신규직원의 교육시에는 선배직원을 멘토로 배정해 보다 체계적인 인사관리를 해나갈 방침이다.
인재DB 또한 제대로 만들어볼 계획이다. 그는 “공무원 개개인의 인사카드가 있지만 중요한 정보는 거의 없고 아는 사람의 평가들을 모아 그 사람을 검증하는게 지금의 방식”이라며 “직원 개개인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기록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어떤사람임을 제대로 알려주는 DB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양 원장부터 인재개발원 직원들과 매일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며 인재개발에 나서고 있다.
◇“워라밸,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 알 때 성립…리더 역할 중요”
한 직장에서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30여년을 일한 양 원장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조언을 쏟아냈다.
그는 “직(職)은 어떤 업(業)을 하기 위해 주어진 역할일 뿐인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보다는 직의 안정성만을 좇아 직만 있고 업은 없어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공직가치에 대한 생각 없이 공무원을 지망하는 공시생들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즉, 업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채 직의 특징만 갖고 하는 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컴포넌트 하나 하나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여겼어요. 그 자식 하나 살리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세는 적어도 저 같아야 해요. 워라밸은 업무시간이 짧고 여유롭다고 오는게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두고 그 일을 하며 스스로 행복해야 집에 가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업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양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리더는 직원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업을 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깨우쳐주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개개인이 자신의 업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노력할 때 진정한 워라밸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원장은 많은 이들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어릴 땐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 만큼은 벗어나자’는게 꿈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원하는 것들을 성취했다고 본다”며 “그 다음은 내가 가진 힘을 통해 누군가에게 나누는 일이 ‘꿈 너머 꿈’이다. 이를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준비가 돼 있다”고 웃어 보였다.
양향자 원장은
△1967년 전남 화순 출생 △광주여상 △삼성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 △더불어민주당 4·13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광주미래산업전략연구소 초대 이사장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