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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충돌하는 요즘, 저마다 진실이라는 외침이 뒤섞인다. 말과 말이 오가면서 정작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순간, 바로 상징과 기호가 등장한다. 기호학의 대가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 을 통해 “모든 진실이 모든 이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에코의 말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을 메운 ‘노란 리본’과 태극기가 바로 대표적인 상징과 기호다.
△‘각양각색’ 리본의 기원
리본은 원래 매듭이나 장식용 끈을 말한다. 머리를 묶거나, 상자를 포장할 때 쓰는 끈도 모두 리본이었을 뿐 기호나 상징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특별한 기호나 상징으로 심정적 동의를 유도하며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개선을 추구하는 ‘인식 리본’은 1991년 처음 등장했다. 그해 토니상 시상식에 영화배우 제러미 아이언스가 에이즈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를 차별하지 말자며 달고 나온 빨간 리본을 인식 리본 대중화의 첫 사례로 본다. 사람들은 여전히 에이즈를 두려워했지만 빨간 리본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십자가는 그 상징을 퍼뜨리는 데 2000년이 걸렸는데 빨간 리본은 단 1년 만에 퍼졌다”고 보도했다.
빨간 리본에 영향을 받은 각종 운동 단체들이 색깔만 달리해 인식개선에 활용하면서 변형을 가져왔다. 가장 일반적인 게 유방암 캠페인에 쓰이는 ‘핑크 리본’이다. 유방암이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만큼 이 캠페인을 주도한 업체는 화장품회사 에스티로더다. 국내에선 아모레퍼시픽 등이 동참 중이다. 핑크가 여성성을 상징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여성운동의 아이콘으로 확대해 쓰인다.
2007년부터 어린이재단이 개최한 ‘그린 리본 마라톤 대회’는 매년 실종 아동찾기 및 아동폭력, 미아방지 및 학대근절 캠페인 실천을 걸고 ‘그린 리본’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달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스타들의 ‘파란 리본’도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파란 리본’은 검열에 대한 반대와 표현의 자유를 뜻했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해 법정투쟁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 정치적 기호로 변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기호는 바로 노란 리본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가장 뼈아픈 참사 중 하나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이 나왔고 대부분의 국민이 노란 리본을 스스로 가슴에 달며 슬픔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이나 시골의 어르신이나 경계가 없었다.
노란 리본의 기원은 몇 가지 설(說)이 있다. 먼저 1973년 토니 올랜도가 부른 팝송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색 리본을 묶어 두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이 노래는 감옥에 있던 남편이 출소를 앞두고 아내에게 ‘나를 기다렸다면 집 앞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편지를 썼는데, 출소 후 가보니 나무에 한가득 노란 리본이 달려있더라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1965~1973년 베트남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미군을 찾기 위해 가족들이 노란 리본 달기 시작한 게 처음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란 리본을 형상화한 배지를 방한 기간 내내 달고 다녔다. 국무의원들도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에는 딱히 정치적인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노란 리본은 최근 대통령 탄핵사태와 맞물리면서 정치적인 상징으로 대두하고 있다. 탄핵찬성 촛불집회에 나온 이들과 야당 정치인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와도 관련이 있어 노란 리본을 달았다고 한다. 이 탓에 박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노란 리본’의 순수한 의미가 변질되었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다. 대신 태극기를 휘두르고 나와 박 대통령의 탄핵 각하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린 탄핵찬성과 반대진영의 시위에서 노란 리본과 태극기가 물결을 이룬 이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 리본은 ‘세월호 희생자의 추모와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공감과 지지의 표현이자 연대의 행위로 인식되었다”며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노란 리본’의 순수한 의미가 마치 정치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 평론가는 “보편적인 상징이자 기호였던 노란 리본과 태극기가 자칫 분열의 상징이 되어 버리는 상황은 결국 모두에게 상처가 될 뿐이다”며 “상호 다른 입장에 있더라도 노란 리본과 태극기를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