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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서가]① 함승희 대표 "경영은 원칙주의 독서는 무원칙주의"

강경록 기자I 2016.05.18 06:07:00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 인터뷰
대표 애독서 ''퍼스트 무버''
성공방정식 버려야 성공
후발주자로 따라가야 미래 없어
책벌레지만 직원에 추천은 안해
독서환경이 만드는 일 먼저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피터 언더우드가 쓴 ‘퍼스트 무버’를 추천하며 “한국인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선=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지금은 ‘퍼스트 무버’ 시대다. 이 시대에는 창의력이 곧 경쟁력이다. 창의력은 기존의 틀을 깨야만 키울 수 있다. 결국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이나 조직 등 근본을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를 이끌고 있는 함승희(65) 대표의 철학은 “과거의 전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강원랜드 대표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임직원에게 던진 화두가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이 글귀는 ‘멀리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함 대표는 당시를 돌이키며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강원랜드 임직원이라면 10~20년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함 대표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책 한 권을 찾아내 다시 읽었다. 연세대를 설립한 언더우드 가문의 4대손이자 한국에 뿌리를 둔 서양인으로 살아온 피터 언더우드가 쓴 ‘퍼스트 무버’(황금사자·2012)다. 과거의 성공방정식 따위는 내다버리는 선발주자가 돼야 한다는 역설이 가슴에 꽂혔다. 패스트 팔로어(후발주자)로 따라가봤자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그는 “과거 한국사회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결과만을 중시했다면 이제부턴 과정의 답을 찾는 사고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검사 출신 대쪽 사장…“독서만큼은 원칙 없다”

“국회의원은 패거리(모임) 정치를 잘한다. 남들이 뭐라든 시류를 바꿔가며 패거리를 잘 만들면 다선할 수 있다. 반면 검사는 외롭게 살아 남아야 한다. 오히려 남과 어울릴수록 문제가 된다. 강원랜드 대표는 이 두 가지를 다 겸비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부패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해온 함 대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취임 후 ‘원칙’을 내세우며 강원랜드의 개혁을 이끈 지 1년 6개월째. 강원랜드는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도 부패방지 시책평가’에서 우수등급에 해당하는 2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간 강력한 부패척결 의지를 피력해온 함 대표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함 대표 이전의 강원랜드는 2년 연속 최하위 5등급의 불명예를 쓰고 있었다.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불리던 강원랜드를 청렴의 아이콘으로 변신케 한 비결로 그는 “한번 정해놓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원칙 중 하나가 인사다. 함 대표는 “최고경영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부임을 하면 힘써준 사람의 청탁을 뿌리칠 수 없다. 임직원의 채용·승진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직원-임원-사장의 부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공정한 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예외는 있는 법. 대쪽같은 함 대표의 예외는 ‘독서’다. 책읽는 일에서만큼은 “원칙이 없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함 대표의 다독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 취임 후 읽은 책만 100여권이라는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라고 자신의 독서습관을 소개했다.

“오후 8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이다. 책을 읽는 데 굳이 장르를 따지지 않는다. 소설도 좋아하고 수필도 좋아한다. ‘이코노미스트’ ‘타임’ 등 전문잡지는 물론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대중적 매거진도 자주 본다. 취미 삼아 ‘하우스&가든’ 같은 화보도 옆에 두고 본다. 좋은 시설이나 꽃·그림 등이 있으면 틈틈이 해당 시설팀에 넘겨 사업계획에 참고하라고 넘겨주기도 한다.”

◇ 책 한권 던져주기보다 독서환경 만들어줘야

얼마 전부터는 문소영의 ‘조선의 못난 개항’(역사의아침·2013)을 읽고 있다. 19세기 개항기에 일본과 조선이 대응한 방식의 결정적 차이를 조목조목 짚어내 보여준 책. 함 대표는 “조선이 개항에 실패한 이유로 저자는 지식인이 민중을 깨우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며 “개혁·혁신을 앞에 둔 상황에서는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개혁·혁신이 성공하려면 아래(국민·직원)부터의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직원들에게 ‘책 좀 읽으라’고 닦달할 만도 한데 특이하게도 함 대표는 직원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는단다. 달랑 책 한 권을 건네주기보다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주변환경이 폐쇄적이라 새로운 것을 접할 기회가 부족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 현재 강원랜드는 직원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사서 볼 수 있도록 도서구입비용을 지원한다. 매달 외부 전문인력을 초빙해 명사특강을 진행하며 안목을 넓히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강원랜드의 환경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퍼스트 무버’는 그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막막한 현실에 좌절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대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일러주기 때문. “창의력이란 건 기존 문화를 깨면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정답 찾는 법을 버리고 ‘왜’ ‘어떻게’ 등을 먼저 생각하는 일을 습관처럼 체득해야 한다. 문화나 교육·조직을 바꾸겠다는 노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정책입안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는 “강원랜드 대표로 취임 후 지난 1년 6개월간 1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 함승희 대표는?

1951년 강원 양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22회)에 합격해 서울지방검찰청 형사부·특수부 검사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를 지냈다. 그 시절 별명은 ‘저승사자’. 서울지검 특수부 시절 1년 동안 280명을 구속하며 최단기간 최다범법자 구속기록을 세워 2001년 ‘한국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 ‘모래시계’ 속 검사,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 소탕 검사의 모델이 바로 그다. 1994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노원갑에 출마, 당선된 후에는 당 대표비서실장을 지냈다. 2014년 11월 제8대 강원랜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피터 언더우드가 쓴 ‘퍼스트 무버’를 추천하며 “한국인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강원랜드 대표로 취임 후 지난 1년 6개월간 1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피터 언더우드가 쓴 ‘퍼스트 무버’를 추천하며 “한국인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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