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금융투자업계가 만물상이 됐다?
브로커리지 수익 감소로 난항에 빠진 증권사와 펀드 순자산 반 토막에 처한 자산운용사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 배, 비행기까지 눈에 불을 켜고 돈이 될 새로운 자산을 찾아 헤매고 있다.
투자처를 다양하게 한다는 의의도 있지만 거래량이 줄어드는 시기에 ‘울며 겨자 먹기’라는 속내도 만만치 않다.
◇ 대체투자 원조는 자사 건물 임대
처음 증권사들이 수익을 얻던 가장 원초적인 대안투자는 자기 건물 내 쓰지 않는 층에 세를 놓는 것이었다. 서울 여의도 ‘목 좋은’ 곳에 있는 증권사들은 1층에 커피전문점이나 빵집을 내주거나 지하에 음식점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받았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여의도 증권맨들의 발걸음에 커피전문점은 서로 입점하려 셋값을 올렸다. 증권사들도 10~20%대 직원 할인을 받았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
한두 층만 임대를 놓은 곳도 있지만 임대가 본업인지, 브로커리지가 본업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브로커리지가 약한 모 증권사는 거의 모든 층을 다른 증권사에 세를 주며 수익을 얻기도 했다. 부동산 수익은 거래량이 급감하던 2010년 이후 증권사들의 쏠쏠한 이익으로 돌아왔다. 이에 증권사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2004년 ‘맵스 프런티어 4호’를 통해 서울 강남 대치동 퍼시픽 타워에 투자했다. 2009년 청산 당시 누적수익률이 211.3%에 달했으니 성공적인 수익을 거둔 셈. 이외에도 가락동과 삼성동 등 강남 노른자 땅에 투자하며 설정 5년간 세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운용의 성과에 고무된 금융투자업계는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미래에셋운용은 중국 상하이와 미국 시카고, 워싱턴 등에 오피스 건물을 적극 매입하며 주식형 펀드 못지않은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현대증권(003450) 역시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 그룹의 쇼핑몰을 인수해 임대 사업에 나섰다. 또 일본 도쿄 노른자 땅인 신주쿠의 요츠야 빌딩을 65억엔(605억원)에 인수, 글로벌 부동산 투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사모펀드 형식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사무실의 대출 채권에 투자하며 부동산투자에 뛰어들었다. 현재 한화운용이 투자한 사무실에는 구글과 아마존 등 굵직굵직한 글로벌 기업이 입주해 있다
◇선박·배 이어 리조트 투자까지
삼면이 바다인 특징을 살려 선박에 투자하는 증권사도 있다. 조선사 현대중공업 계열인 하이투자증권은 모기업의 성격을 살려 선박금융팀을 만들었다.
같은 계열사 하이자산운용은 공모펀드로 선박에 투자하는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하이골드오션선박특별자산’ 펀드는 2010년 설정된 후 900억원의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기관투자가 대다수이긴 하지만 개인투자자에게도 문을 열어 두며 대체투자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하늘로 눈을 돌린 곳도 있다. KDB대우증권(006800)은 지난해 4월 항공기 금융 전문업체인 노부스캐피탈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과 홍콩 지역의 항공기 금융 딜(deal)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가져왔다. 특히 대우증권은 핀란드 항공이 사용하고 있는 A330-300에 대한 판매와 재임대에도 투자했다.
점점 투자처가 넓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유원지에 투자하는 증권사까지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은 레고랜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레고랜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장난감 ‘레고’로 모든 조형물이 만들어지는 테마파크다. 덴마크 빌룬드와 미국 플로리다 등에 이어 세계 8번째 레고랜드가 2017년 강원도 춘천에서 문을 열기 위해 2014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될 예정이다.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소위 ‘덕후 몰이’까지 가능한 이 테마파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맞물리며 연간 200만명의 입장객을 기대하고 있다.
상품 투자 역시 단순히 원유나 농산물 등 일차원적인 성격에서 진화하고 있다. 유가나 금, 은 등의 상품 가격의 방향성과 직접 연동 되는 상품이 아니라 유전 광구나 셰일 가스 생산 라인에 투자하며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이 중 일부 상품은 마스터합자조합(MLP·Master Limited Partnership) 펀드나 증권사의 랩 상품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만큼,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역시 투자처를 더욱 다각화할 것”이라며 “전문성이나 인프라 확충 노력 등이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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