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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th SRE]이재현 부재, CJ 인사의 속내는?

이승현 기자I 2013.11.13 07:00:00

지주사 대표에 외부 인사 처음 선임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이재현 회장의 부재로 비상경영체제인 CJ그룹이 지난 10월 초 이례적으로 수시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또 같은 달 30일에는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하며 내년부터 그룹을 이끌어갈 리더들을 세웠다.

전체적으로 비상경영 상황을 헤쳐나갈 전문경영인들을 중용하면서도 변화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복합적인 의도가 들어 있는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수시임원인사는 ‘파격’, 정기임원인사는 ‘안정’으로 설명된다.

CJ그룹은 지난 10월 초 단행한 수시 임원인사를 통해 이채욱 CJ대한통운 대표(부회장)를 지주사인 CJ㈜ 대표이사로 겸직 발령했다. 외부 인사가 지주사 대표를 맡은 것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의 주요 요직인 지주사 사업팀장에는 구창근 부사장을, 재무팀장에 김재홍 상무, 인사팀장 이준영 상무, 홍보실장 김상영 부사장, CSV경영실장 민희경 부사장, 인재원장 손관수 부사장, 인재원부원장 신영수 상무, 법무TF팀장 성용준 부사장 등 주요 보직자들을 새로 임명했다.

반면 이관훈 전 지주사 대표는 상담역을 맡게 됐고, CSR팀장이었던 권인태 부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룹 홍보실장이었던 신동휘 부사장은 CJ대한통운 전략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세 명은 모두 CJ 출신 인사들이다. 그룹 내 주요 요직을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한 것이다.

◇가신그룹 ‘물갈이’

업계에서는 CJ그룹의 이번 인사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정기인사를 앞두고 전례가 없던 수시인사를 단행했다는 점, CJ 출신이 아닌 인사를 그룹 넘버2 자리인 지주사 대표이사에 앉혔다는 점 등을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CJ그룹이 표면적으로 밝힌 이번 인사의 배경은 글로벌 사업 강화와 이재현 회장의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을 메우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채욱 대표가 GE메디컬 부문 아태지역 총괄사장과 GE코리아 회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낸 대표적인 글로벌 전문 경영인이란 점을 감안해 지주사 대표로 발탁하게 됐다는 것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인사 시점에 대해서 “내년도 경영계획을 세우고 있는 시기라 책임경영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수시인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재현 회장이 가신그룹에 한계를 느껴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구속 사태와 삼성과의 관계 등을 보면서 기존 인력으로는 앞으로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는 이 같은 이재현 회장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했다. CJ 출신에 대한 불신과 외부 수혈을 통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의도가 담겨 있다.

이 같은 인사 추세는 지난달 30일 발표된 2014년도 정기임원인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정기인사에서는 4명의 대표이사가 교체되고, 2명의 공동대표가 선임됐다. 이들 중 신현재 CJ대한통운 공동대표와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만이 CJ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영입됐던 인사들이 대거 주요 자리를 꿰찼다.

이들과 함께 현재 CJ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표 중 CJ 출신은 강석희 CJ E&M 대표, 서정 CJ CGV 대표 등이 있다.

이해선 CJ오쇼핑 대표는 CJ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다른 회사를 거쳐 다시 CJ그룹으로 돌아온 사례이고, 이채욱 ㈜CJ·CJ대한통운 대표와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 변동식 CJ오쇼핑 공동대표, 김진석 CJ헬로비전 대표이사, 정문목 CJ푸드빌 대표이사, 허민호 CJ올리브영 대표 등은 모두 외부에서 영입됐던 인사들이다.

지난 7월에는 컨설턴트 출신인 박성훈 부사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영입돼 CJ그룹의 브랜드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노희영 고문은 최근 그룹의 마케팅 부문까지 업무 영역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새 인물 중용 부작용 우려

반면 CJ에 인생을 바친 가신들은 그룹 경영의 중심에서 밀리고 있다. 이관훈 전 지주사 대표와 권인태 전 CSR팀장(부사장)이 보직을 받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CJ 출신 고위임원들 중에서도 한직으로 밀려난 인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비상경영체제에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 가신 그룹마저 주류에서 밀려나면 CJ의 정신을 지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가신 그룹은 이재현 회장과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이들”이라며 “이재현 회장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은 가신 그룹 밖에 없다”고 말했다.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대거 영입했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은 더 큰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과 관계개선 ‘속뜻’

이번 인사의 또 다른 속내에는 삼성과의 관계를 새롭게 적립하겠다는 이재현 회장의 의도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삼성그룹이 후계구도 문제로 어수선한 틈을 타 다시 한 번 삼성가의 장자로서 이 회장의 권리를 돼 찾겠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구속 이후 CJ 처지에서는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 삼성과의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례로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측은 지난 10월 1일 열린 이건희 회장과의 상속 재산 관련 항소심 2차 재판에서 소송가액을 96억원에서 1490억원대로 대폭 높이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등 삼성과의 긴장 관계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존 CJ 출신 인사들보다는 새로운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삼성과의 관계 정립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고, 삼성 출신인 이채욱 부회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이재현 회장의 부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오랫동안 이 회장과 함께 해 온 가신 그룹의 특성상 이 회장의 의중을 읽는 데는 능통하지만, 창의적으로 그룹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이 회장의 부재 중에 실질적으로 그룹을 경영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경험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번 정기인사에서는 계열사 내부 승진을 통해 대표이사를 교체하면서 조직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반영했다. 이번에 새롭게 대표이사를 맡은 대부분이 해당 계열사에서 경영지원총괄이나 운영총괄 등으로 일하면서 최고경영자(CEO) 수업을 거쳤다. 강신호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와 김진석 CJ헬로비전 대표이사, 정문목 CJ푸드빌 대표이사, 신현재 CJ대한통운 공동대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같은 판단의 중심에는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여사와 손 여사의 남동생인 손경식 회장이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삼성으로부터 CJ(당시 제일제당)가 분리·독립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손복남 여사가 아들의 구속과 건강 악화, 대 삼성 관계 악화 등으로 CJ가 위기상황에 처하자 다시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CJ 오너가의 결단이 이번 인사에 녹아 있다. 앞으로 CJ그룹은 신구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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