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화려한 패션 감각으로 전 세계 여성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사라 제시카 파커(Sarah Jessica Parker).
그가 의류 사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했을 때, 모두들 ‘고급 브랜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모든 제품의 가격을 20달러(1만8000원) 밑으로 책정한 ‘초저가’ 브랜드, 비튼(Bitten)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난 6월 18일 미국 전역에서 동시에 문을 연 200여개의 비튼 매장은 거의 매일 모든 제품이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파커는 “요즘은 값싸고 질 좋은 원재료가 넘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앞으로 중국 등 신흥 개도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0만원짜리 노트북 컴퓨터, 300만원대 자동차, 30달러(2만7000원)짜리 휴대전화…. 전 세계는 요즘 초저가 전쟁 중이다.
날로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 여파로 소비도 양극화돼 한쪽에선 초고가 명품이 인기를 끄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초저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개도국의 저가 제품 수요가 왕성하게 늘고 있는 데도 기인한다.
대만의 아수스텍 컴퓨터는 이달 중 199달러짜리 노트북PC, ‘Eee PC’를 유럽 및 중국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현대차는 중국 공략을 위해 300만원대의 초저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내수 시장도 저가 열풍에 휩싸이긴 마찬가지다. 최근 ‘고급 외식’ 메뉴로 여겨지던 소고기 삼겹살 1인분을 3000원대에 판매하는 고깃집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햄버거 1개 값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재기되면서 값싼 가격을 무기로 손님들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이다.
최근 창업한 소고기삼겹살 전문점 투삼겹의 둔촌동 본사측은 “반(半) 셀프 시스템 구축으로 인건비를 30% 이상 줄였고 직수입, 직가공, 직유통의 ‘3직’ 시스템으로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1900원짜리 돈가스를 팔기 시작한 와우돈가스도 약 6개월 만에 전국 20개 점포로 확장했다.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내던 결혼정보업체 서비스도 단돈 3만원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선우는 이달부터 맞선 1회 서비스를 3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모든 서비스는 셀프다. 본인이 직접, 온라인상에 등록된 회원들의 정보를 검색한 뒤, 쪽지를 보내고, ‘OK’라는 답변이 오면 서로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선우의 이웅진 사장은 “이 서비스를 갖고 중국으로 진출할 예정”이라며 “이미 중국의 한 업체와 손잡고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서민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사교육 시장에도 초저가 서비스가 선보였다. 온라인 교육업체인 에듀모아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전 과목의 동영상 및 문제집을 월 5500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패키지 서비스를 내놓았다. 푸르넷 아이스쿨도 월 3만원 안팎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할인마트보다 더 ‘할인’해주는 유통업체도 인기몰이 중이다. 하림이 대주주인 농수산홈쇼핑이 운용하는 ‘700마켓’이 바로 그것. 독일의 초저가 수퍼마켓인 알디(ALDI)를 모델로 만든 것인데, 700가지 물건을 다른 곳보다 값싸게 만든다는 모토다. 비결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유통 마진을 줄이는 것.
제품 가격을 1만원 밑으로 끌어내려 화장품시장의 혁명을 가져온 더페이스샵의 김미연 홍보팀장은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1~2개의 제품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지만, 나머지 제품은 명품 소비자라 해도 저가 제품을 구입할 정도로 소비 패턴이 약아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화장 솜이나 매니큐어, 정장 안에 입는 T셔츠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저가 제품으로 해결한다는 것.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과거의 저가 전략은 기술력이 뒤처진 후발 업체들이 주로 사용했다면, 요즘은 해당 업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뛰어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글로벌 소비시장은 10억 명 이상의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므로 기업들은 효과적인 저가 전략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