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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루이비통 로고를 도배한 배경 앞에 선 남자. 명품으로 휘감은 스타일이 장난 아니다. 펜디 자켓과 선글라스, 구찌 마스크, 여기에 정점은 폴로 모자로 찍었다. 웬만한 피부색으론 소화하기 어렵다는 보라색으로. 과연 실존모델이 있을까 싶은 이 ‘비싼’ 장면은 미국작가 트래비스 피쉬(32)가 그려낸 거다. 대놓고 ‘폴로 모자’(Polo Hat·2021)란 타이틀을 달았다.
작가는 유명 패션브랜드에 관심이 지대하단다. 입고 걸치는 이상인 듯하다. 의상·액세서리 등 시선을 사로잡는 모티프 탐색에 적극적이니. 계기가 있단다. 흑인음악에 심취해 힙합그룹 ‘미고스’ 멤버들의 초상을 그리게 됐는데, 문득 그들의 명품 셔츠·스웨터 등이 눈에 확 들어오더란 거다.
이후부터 작가 스스로 지칭하고 완성한 ‘패스트 페인팅’이 연달아 나왔다. 최신 트렌드로 빠르게 제작·유통하는 ‘패스트 패션’을 따라 덩달아 가속을 붙인 작가만의 작업을 말한다. 순수미술과 패션의 끈적한 결합이라고 할까.
실제로 작가의 화면은 대단히 ‘빠르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물을 많이 섞은 물감으로 춤추듯 그려낸다고 하니. 덕분에 섬세하지 못한 선·점·경계가 만든 ‘의도적 실수’를 찾는 재미가 있다. 진짜 명품과 벌려 둔 간격이랄까.
2월 14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가나아트 나인원서 여는 개인전 ‘포토카피 블랙퍼스트’(Photocopy Breakfast)에서 볼 수 있다. 아시아에서 여는 첫 개인전에 뜨끈한 신작 18점을 걸었다. 캔버스에 아크릴. 132.1×121.9㎝. 작가 소장. 가나아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