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를 중심으로 거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데이터의 산업적 활용과 규제 향방이 관심인 가운데, 데이터 독점이라는 말은 하나의 프레임이고 플랫폼 독점과 구분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데이터가 많이 모인다고 해서 독점이라고 볼 수 없으며 데이터 독점으로 소비자 후생이 저해됐다는 증거도 찾기 어려우니 데이터 독점이라는 말보다는 ‘데이터 집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다만, 거대 플랫폼 기업에 데이터가 집중되는 현상은 향후 엄청난 경제력 집중을 초래할수 있으니, 비식별 데이터 거래 시장을 활성화하고 중장기적으로 경쟁제한성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나왔다.
지난 4일 (사)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회장 이성엽 고려대 교수)가 서울대 아시아태평양법센터와 공동으로 주최한 ‘데이터의 소유와 독점’을 주제로 한 2020년 하반기 정기학술대회에서다.
화상회의 솔루션 ‘줌’으로 온라인 중계된 이날 행사는 데이터 소유와 독점이라는 표현이 불러온 오해를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데이터 독점이 아닌 ‘데이터 집중’
지난 8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간 인수합병(M&A)를 심사할 때 데이터 독점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거대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강준모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박사는 ①공공재로 변해가는 데이터의 특징(클라우드 환경에서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셋을 여러 명이 이용)②데이터가 여러 기업에 수집되는 현실(자율주행차 서비스의 경우 제조사, 인포테인먼트시스템 회사, 차량내 스마트폰 미러링 서비스 등)③첨단 AI 서비스 개발 등 사회적 후생저하의 증거가 없음 등을 이유로 데이터 독점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강 박사는 “만약 AJ렌터카(현 SK렌터카)에서 현대기아차가 만든 자율주행차를 빌려주는데 여기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LG전자가 제작했고, (미러링은) 안드로이드 오토를 연결했다면 개인 동의하에 위치정보 등은 수집될 텐데 이 정보는 누가 수집하고 누가 권한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까”라면서 “모든 기업이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아니지만, 플랫폼 독점만 데이터를 가지게 된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그는 “데이터 집중이 스타트업 배제나 플랫폼 독점으로 이어져 사회적 후생을 저해하는가도 불확실하다”면서 “구글이 18개월이상 된 데이터를 폐기하기로 입장을 바꿨듯이 많은 데이터 량이 모인다고 반드시 데이터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개인화를 위해선 올바른 (AI)알고리즘 판단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데이터 시장 초기..섣부른 독점 규제 안 돼
송시강 홍익대 법학과 교수도 “지금 데이터는 시장화 자체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데이터 독점은 프레임이 아닌가 한다”며 “공정위가 지금 데이터 독점을 판단하면 이는 기업집단이 아닌 곳에 대한 경제력 집중에 대한 통제가 돼 법률에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문제가 된다면 콘텐츠 시장이 성숙했을 때, 플랫폼에 대한 데이터 공급 독점 여부를 파악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데이터 자체가 잘 거래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는 시기상조이고, 데이터 경제 발달이 이뤄진 뒤 데이터 독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기윤 SK텔레콤 상무도 “데이터3법 통과로 데이터댐 등 데이터 활성화 정책이 현실감 있게 진행되지만 아쉬움이 많다”면서 “데이터를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수집하는 현실 등 다양한 관계를 분석해주신 강 박사님 의견에 동의하며 국내 기업(네이버·카카오)의 플랫폼 독점이 글로벌 기업들(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독점을 희석한다는 점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병남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정책과장도 “플랫폼 독점과 데이터 독점은 다르다”면서 “어떤 플랫폼이든 개인정보가 모이면 개인정보가 추가로 유출되거나 불법적으로 하는 게 커질 것이니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