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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요즘은 3.1운동이라고 하면 민족대표 31명과 유관순뿐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유관순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함박눈이 내린 이후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포근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바람은 차다. 아직 겨울임을 실감하게 된다. 외투를 좀 더 여미여 100년 전 그날을 잠시 상상해 본다. 옷 안에 태극기 하나씩을 숨긴 채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바쁘게 걸음을 옮겨야 했던 3.1절 전야 사람들을.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3.1운동 정신을 그림으로 이어가고 있는 박시백 화백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부터 역사만화 <35년>을 통해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그림으로 서술하고 있다. 만화라 금방 읽겠지, 재미있겠지라고 접근했다가는 후회막심이다. 박 화백도 껄껄 웃으며 “두세 번 봐야 제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혁명과 비교 못할 3.1운동 함성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5년 단위로 나눠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 지난해부터 발간된 책은 △1910~1915년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1916~1920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921~1925년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등 3권까지 나왔다. 그의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다. 총칼에 베이고 찢길 걸 알면서도 태극기를 손에 쥐고 거리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용기있는 행동들은 묵직한 울림으로 퍼진다.
이리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문용기가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군중의 앞으로 나아가자 일본헌병은 칼로 그의 오른팔을 베었다. 그는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나아가자 헌병은 그의 왼팔마저 베어버렸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고 몸으로 뛰어가며 만세를 외쳤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창원 만세운동 때는 선두에 섰던 김수동이 태극기를 흔들다 일본 헌병의 조준사격에 쓰러지자 그 옆에 있던 변갑섭이 태극기를 받아들고 대열을 이끌었다. 일본의 총칼에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3.1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총칼에 맞서 만세운동을 한 대단한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죠. 유관순은 행복한 케이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니까요. ”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만세 운동 이후 총 1548회의 집회에 204만6938명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4만6306명이 수감되고 1만5849명이 다치고 7509명이 목숨을 잃었다. “촛불혁명도 3.1운동에 못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굉장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초기엔 기독교나 천도교 인사들, 학생, 교사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유생, 노동자, 농민, 상인, 승려, 기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전연령이 참여했다. 그들은 이 싸움을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든 것을 다 걸고 나섰다.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주역들은 어쩌면 현장의 지도자들로, 이름 없는 수많은 유관순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을 찾아내 기리고 좀 더 나아갔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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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논란…1945 이전 활동에 초점 맞춰야
그의 책에는 역사 교과서에도 일반 역사책에도 없는 내용이 많다. 김알렉산드라, 김립, 남만춘 등 생경한 이름도 종종 등장한다. “초기 독립운동 방향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쪽은 사회주의를, 어떤 쪽은 민족주의를 채택했지요. 큰 방향은 모두가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특별히 사회주의에 주목해서 확대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 영향과 활동의 크기만큼 다뤘습니다.”
볼셰비키 간부이기 이전에 조선의 독립을 열망했던 조선인 김알렉산드라는 아무르강변의 총살 현장에서 13걸음을 걸은 뒤 “지금 내가 걸은 열세 걸음은 조선의 13개도다. 조선의 13도 젊은이들이여!”를 외치며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2009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김일성의 숙부 김형권, 외숙 강진석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하지만 김원봉의 독립유공장 인정여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1945년 이전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와 결부지어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눈다면 제대로 된 기록과 평가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한 독립운동가 중에도 변절자가 나오거든요. 일보강점기 35년 전 과정 중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독립에 투신했다면 하나같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엄혹한 시대일수록 개인의 안위가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친일파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친일파가 그 당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 사람들은 좀 더 출세하고 영화를 누리려고 민족을 배신한거죠. 지금 그들의 재산을 뺏고 그럴 순 없겠지만, 다만 사실만큼은 적시해줘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이 최소한 독립운동가를 예우하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1930년대를 집필 중이다. “올해 내에 4~5권을 낼 계획입니다. 6~7권은 내년 정도에 나올 거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학구적이고 선구적인 모습을 배울 수 있다면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거면 행복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