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몰라의 IT이야기]휘청이는 x86의 운명 짊어진 양대산맥①

이재운 기자I 2019.02.05 11:04:21

인텔 서니코브(Sunny Cove)와 AMD 젠2(Zen 2)

[IT벤치마크팀 닥터몰라] 2019년은 x86 역사에 또다시 한 획을 긋는 해가 된다. 업계 1인자 인텔과 2인자 AMD가 같은 해에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교체하는 것은 지난 2011년 샌디브릿지(Sandy Bridge)와 불도저(Bulldozer) 이후 8년만에 있는 일이다. 과거의 ‘동반 교체’는 인텔에게 도약의 가속화를, AMD에는 사상 최악의 몰락을 선사하며 양사의 격차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까지 확대해놓은 바 있다.

오늘날의 x86 생태계 질서는 상당부분 ‘2011 체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야심작 젠(Zen) 마이크로아키텍처에 기반한 라이젠(Ryzen) 시리즈를 2017년 출시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 2011년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AMD이나 여전히 ‘2011 체제’의 큰 틀은 건재하다. 매번 엇갈렸던 인텔과 AMD가 장장 8년만에 각자의 새 마이크로아키텍처로 정면 충돌하는 2019년은 그래서 어느 쪽이 이기든 x86 역사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텔에게 2011년은 매해 제조공정과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교대로 교체하는 ‘틱톡’ 모델이 도입 5년차를 맞은 최전성기로 기록된다. 시계를 빠르게 돌려 보면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2016년을 마지막으로 ‘틱톡’ 모델은 폐기되었고, 이후 제조공정과 마이크로아키텍처 교체주기를 3년으로 늘린 ‘P-A-O’ 모델을 도입했다 1년만에 이를 번복, 재차 4년으로 늘렸다가 현재는 주기성을 일시 포기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2011년의 속도가 유지되었다면 인텔은 2014년 14nm 제조공정을, 2016년 10nm 제조공정을 찍고 지금쯤 7nm 시제품이 상용화되어 있어야 한다.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음은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닥터몰라/인텔 제공
핵심은 14nm 이전까지 마이크로아키텍처와 제조공정의 상호작용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데 있었다. 수백-수십nm 시대에는 마이크로아키텍처는 오직 논리적으로 최적의 설계일 것만이 요구되었고 이를 구현하는 제조공정은 마치 독립사건처럼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1x nm’ 대에 돌입한 인텔은 제조공정과의 상호작용이 마이크로아키텍처의 동작 자체를 간섭하는 효과를 목도했다. 각 파이프라인 스테이지의 물리적 구성상 불균등성이 작동 속도를 높이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현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작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분할하여, 공장 생산라인의 노동자가 분업하듯 병렬처리가 가능하게 한다. 이를 공장의 생산설비에 빗대어 ‘파이프라인’이라 하는데, 아무리 가능한 한 균등하게 파이프라인 스테이지를 나누려고 해도 완벽하게 균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공장 생산라인의 모든 단계에서 차체가 각 노동자 앞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똑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문제는, 이전 시대까지는 이러한 불균등성이 직접 애로사항으로 드러나는 일이 드물었지만, 제조공정이 전례없이 미세화된 1x nm 시대에 접어들며 불균등성 자체가 성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세서의 작동 속도는 파이프라인 스테이지 중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스테이지 하나에 맞춰져 전체가 느려지게 된다.

공장 생산라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로 인해 당초 최초의 14nm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예정되었던 브로드웰(Broadwell)이 아예 주류 시장 출시계획에서 밀려나고, 그 다음 세대 마이크로아키텍처인 스카이레이크(Skylake)가 대타로 등판하는 것으로 결정되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22nm 하즈웰(Haswell)이 ‘하즈웰 리프레시(Haswell Refresh)’ 라는 이름으로 1년간 수명을 연장하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닥터몰라/인텔 제공
추측컨대 이 즈음 인텔 내부에서는 마이크로아키텍처와 제조공정을 분립하여 고속질주한 과거의 성장전략을 근본적으로 회고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마이크로아키텍처’, ‘제조공정’ 단 둘만을 성장엔진으로 간주한 이분법적 사고 자체를 전환하는 시도가 내부로부터 수행된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시각 기준 지난달 13일 개최된 인텔 아키텍처데이(Architecture Day) 2018 행사에는 그 흔적이 묻어난다. 이때 인텔은 더이상 마이크로아키텍처와 제조공정만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세대를 정의하지 않는 대신 메모리, 인터커넥트, 보안 및 소프트웨어까지 총 6가지 영역에서의 발전이 세대교체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를 문안 그대로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마이크로아키텍처와 제조공정이 개선되더라도 나머지 4영역이 그대로라면 ‘차세대’ 가 아닐 수 있으며, 거꾸로 마이크로아키텍처나 제조공정이 제자리에 머물더라도 나머지 4영역, 즉 플랫폼을 크게 개선하는 것으로 ‘차세대’라 이름붙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미 모바일 시장에서 인텔은 7세대 코어(Core) 마이크로프로세서 ‘카비레이크(Kaby Lake)’와 함께 패키징되는 플랫폼 컨트롤러 허브(PCH) 칩셋과 모뎀을 교체하며 ‘카비레이크 리프레시(Kaby Lake Refresh)’, ‘위스키(Whiskey)/앰버레이크(Amber Lake)’ 등의 이름으로 8세대, 9세대로 재정의한 바 있는데 이날의 발표는 그간의 행보를 정당화하고, 추인할 이론을 확립해 선언한 것이다.

닥터몰라/인텔 제공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세대가 시스템의 다른 구성요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닌 플랫폼과의 유기체로서 정의된다는 확장된 세계관을 채택한 이상 인텔의 행보 역시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샌디브릿지 이후 숱한 -레이크(Lake)의 시대까지가 1막이었다면, 이제 2막 1장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발표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서니코브(Sunny Cove) 마이크로아키텍처이다. (다음주 2편에서 이어집니다)

▲닥터몰라 소개=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운영진이 하드웨어를 논하는 공간이다. 부품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폭 넓은 하드웨어를 벤치마크하는 팀이기도 하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미 알려진 성능의 재확인을 넘어 기존 리뷰보다 한층 더 깊게 나아가 일반적으로 검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숨은 성능까지 예측가능한 수리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필진으로 이대근 씨(KAIST 수리과학 전공)와 이진협 씨(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 및 컴퓨터공학 전공), 이주형 씨(백투더맥 리뷰 에디터/Shakr 필드 엔지니어) 등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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