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지긋이 감고 2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던 현명관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꺼낸 첫 단어는 뜻밖에도 혁명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충격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 때 기억은 여전히 “명료하다”고 했다. 현 전 비서실장은 신경영의 시작은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라고 회고했다.
“신경영 선포 직전인 1993년 초 당시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이대원 삼성항공 사장,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장 등과 함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LA로 급히 오라고 연락을 받았다. ”
서둘러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갔더니 대뜸 금일봉을 주면서 쇼핑을 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정신이 멍했다. 이억만리를 쇼핑을 하라고 부른 건지, 이 회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다들 어리둥절했다.”
숨겨졌던 이 회장의 의도는 다음 날 저녁 드러났다. 그는 “삼성 제품이 진열대 구석에 배치돼 싸구려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는 건 아닌지, 물건을 살 때 점원이 삼성제품을 추천해 주던지 등을 일일이 묻더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이 회장은 호텔로 이들을 불러모았다. 이번엔 소니, 파나소닉, 필립스 등 경쟁사 제품들이 낱낱이 분해된 채로 진열돼 있었다.
“소니의 TV 속 배선은 깔끔하게 처리돼 있는데 삼성 것은 야단법석 난리라면서 왜 이러냐고 꼼꼼히 지적을 했다.”
모두가 국내 1위라는 데 만족하며 ‘우물 안 개구리’ 였기에 충격은 더했다. 그는 “그때부터 이 회장은 위기의식을 느끼며 경영 혁신을 의도하고 있었다”며 “신경영 이전 구체제가 ‘한국 속의 삼성’이었다면, 창조적 파괴로 대표되는 신체제는 ‘세계 속의 삼성’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대적 의식개혁인 만큼 충격요법이 있어야 했다. 첫 번째 충격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 소집이었다. “항공기를 전세 내서 그룹의 중책 1800여명을 해외에 모두 소집한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어느 기업이 이런 형태의 회의를 소집한 사례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요법은 이 회장의 오른팔을 과감히 자른 것이었다.
“저녁 먹고 9시쯤 호텔에 집합해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두가 주목하는데 이 회장과 이수빈 비서실장 간 대화 내용이 연회장 안에 흘러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듣고 있는데 질이 중요하단 회장의 말에 이 실장이 ‘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고 했고 조금 뒤 녹음기에서 바로 ‘쨍그랑’ 소리가 나서 모두가 놀랐다.”
질 경영을 강조하던 이 회장에게 질과 양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얘기한 이 비서실장은 결국 몇 달 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후임으로 그가 앉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는 “구 체제대로 나갔다면, 오늘날 삼성은 망했든지 존재하더라도 세계 3~4위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이 회장과 같이 오너가 확고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 LG나 현대 등 다른 기업도 경영혁신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신경영의 가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삼성의 치명적 약점에 경종을 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약점 없는 조직은 없다. 이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잘 나갈 때가 바로 위기인데 지금의 삼성이 그렇다.”
원천기술이 전혀 없는 데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그는 “추종의 문화가 조직에 퍼져 있다”며 “퍼스트 무버(선도자)로서의 창조 문화가 형성이 아직 안돼 있다”고 꼬집었다. 취약한 소프트웨어 파워도 단점으로 꼽았다.
“최근 소프트웨어 인력을 1만명 채용하고 바이오테크놀로지 집중하겠다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제3자로서 절박감은 안 느껴진다 .”
이어 이제는 삼성에는 ‘제2의 신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삼성이 제2의 창조적 파괴를 할 때”라며 “과거 신경영 때처럼 ’죽기 아님 살기’의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해야 하는 데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특히 삼성과 같은 1위 기업은 하드웨어 강점을 기반으로 병원, 대학 등 서비스 측면에서도 세계적 기업과 단체들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아직도 후진국 수준인 국내 서비스 분야를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보다는 삼성 같은 기업이 앞장서야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상생, 경제민주화 등과 관련해서는 “시대적 요구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시늉을 하는 기업은 1등이 되기 어렵다”며 “대기업들은 모두 국민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책무”라고 평가했다.
◇ 현명관(71)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무원 생활을 하다 감사원 부감사관을 끝으로 삼성그룹에 경력으로 입사했다. 호텔신라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지난 1993년 이건희 삼성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이후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그룹내 신경영 확산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 일본담당 회장을 역임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과 삼성물산 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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