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품·환불은 고객 책임” 믿었던 플랫폼에 뒤통수 맞는 소비자

윤정훈 기자I 2022.02.26 10:30:00

발란, 제품 손상 발견됐지만 환불비용 1만원 고객 전가
스탁엑스서 구매한 ‘슈프림 스텝 래더’ 손상에도 환불 불가 판정
수백만원 명품 판매하지만 반품에 대한 안내는 미비
플랫폼 연대 책임 질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해야 지적도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이 정도 하자는 정상이라고 봐야합니다. 백화점보다 가격 메리트가 있으니깐 반품 비용은 감수하셔야죠.”

발란에서 프라다 백을 구매한 A씨가 퍼스널쇼퍼와 나눈 대화 내용(사진=고객 제보)
A씨가 최근 발란에서 237만원 상당의 프라다 버킷백을 구매했다가 긁힌 자국 등 손상을 발견하고 반품을 요청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하자품 관련 기준에 대해 묻자, 고객센터는 판매자를 통해 정상 제품으로 판명했으니 1만원의 환불 비용을 송금하라고 했다. 플랫폼을 믿고 제품을 구매했던 A씨는 판매자만 맹신하는 플랫폼에 배신감을 느꼈다.

B씨는 글로벌 1위 중개 플랫폼 스탁엑스에서 50만원을 주고 구매한 ‘슈프림 스텝 래더’에서 다수의 스크래치를 발견했지만 환불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부 검수 기준으로 보면 정상 제품이니 환불을 원하면 다른 고객에게 재판매하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B씨는 환불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고객센터는 반품이 불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명품을 정식매장보다 싸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명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의 급성장만큼 가품 논란, 반품·환불 등에 대한 소비자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있는 플랫폼이 분쟁 조정역할만 할뿐 해결해주지 않는 데 있다. 이에 플랫폼을 보고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소비자원에 중재 신청의 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다.

B씨가 구매한 제품을 환불해주지 않은 스탁엑스는 전자상거래법상 위반의 소지가 있다. 전자상거래법 17조 1항에 따르면 소비자는 전자상거래로 구입한 제품에 대해 7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요청할 수 있다.

발란은 환불은 해줬지만, 그 과정에서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한 경우다. 약관상 상품에 내외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하자품이거나 오배송(사이즈, 색상, 제품 상이)일 경우는 업체가 반품 비용을 부담한다. 문제는 하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상세히 공지하지 않는 점이다. 때문에 해외배송 반품의 경우 소비자가 하자 입증을 못하면 최대 수십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A씨는 “플랫폼을 보고 수 백 만원을 쓰는건데, 문제가 발생하니 개별 판매자를 신고하라고 하는 건 책임 회피 아니냐”며 “발란은 사전검수도 안 하고, 하자 판단도 파트너사에 맡기고 직접 하는 게 없다. 사전에 하자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표기나 반품비용 등에 안내도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발란 측은 “상품 하자 판단은 1차적으로 파트너사가 진행하고 있다”며 “파트너사와 고객의 입장이 다른 경우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도움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소비자원 신고는 원칙적으로 소비자가 직접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발란은 최대한 가능한 선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계약서와 약관을 기반으로 명품 플랫폼에서 가장 까다로운 파트너사 페널티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며 “고의성을 가진 파트너사의 경우 가차없이 퇴점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씨가 스탁엑스에서 구매한 ‘슈프림 스텝 래더’에 스크래치 자국이 다수 있다(사진=고객 제보)
대다수 명품 온라인 플랫폼은 발란과 유사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트렌비, 머스트잇 등도 정확한 하자의 기준을 공지하지 않고 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플랫폼은 중개업체이기 때문에 소비자에 대한 직접 보상 책임은 없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플랫폼은 판매자의 정보와 스스로 판매자가 아님을 공지할 의무가 있고,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반품 기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설명해야 한다”며 “현행법상 온라인 거래상 하자가 발생했을 때 판매자에 비해 플랫폼의 책임이 적은 측면이 있는데,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해 개선해나갈 예정이다”고 첨언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를 외면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소비자법 상 중개업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확실하니깐 책임을 회피하고,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배상을 잘 안해주고,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것”이라며 “공정위에서도 이런 문제가 많다는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작년 전자상거래법에 플랫폼 연대책임제 등을 도입하고자 했지만 플랫폼 업계의 반대에 부딪쳐 연대책임을 완화한 전부개정안 수정안을 발의했다. 공정위 외에도 30여개의 플랫폼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의 혁신성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차기 정권에서 온라인 플랫폼법,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등이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플랫폼 기업이 성장의 과실만 따먹고, 책임은 회피하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위에서 부터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의 광고(사진=각 사)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