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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지난 23일 서울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펀드 환매 중단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준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피의자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경찰에 잡힌 장면이다.
◇택시 수차례 갈아타고, 방향 알 수 없게 이동…치밀한 김 회장의 도피
이들은 약 5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며 해외로 몸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지만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지난 23일 경찰은 서울 성북구 한 주택가에서 외출 후 귀가하던 김 전 회장을 체포했고, 이어 라임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검거했다.
이들 피의자의 행적은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이들을 체포한 것 역시 그동안 라임사태를 수사해오던 서울 남부지검이 아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라임 사태와 별대로 경기도 내 버스회사인 수원여객의 회삿돈 16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김 회장을 쫓던 경기남부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가 라임 사태의 ‘몸통’을 모두 검거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지수대는 최근 김 회장이 제 3의 인물인 A씨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경찰에 검거된 김 회장 최측근의 가족과 A씨가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 김 회장과도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예상은 적중했고, 폐쇄회로(CC)TV를 통해 그의 행적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의식한 것 같은 김 회장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A씨를 만나러 가면서도 택시를 서너 번 갈아탔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갈아타는 것도 바로 그 자리에서 갈아타는 것도 아닌 도보로 따로 이동한 후 택시를 탔다. 이동 방향 또한 동서남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승명 경기남부청 지수대장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택시를 굉장히 여러 번 갈아탔고, 방향도 일정치 않아 행적을 추적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최근 이렇게 용의주도한 사람은 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경찰은 김 회장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고급 빌라 특정하고 잠복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일 오후 9시께 김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잠복 경찰관의 눈에 들어왔다. 또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려던 그는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가짜 신분증까지 제시했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경찰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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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 은신처서 나온 뜻밖의 성과…라임 사태 ‘몸통’ 잡았다
경찰이 판단하기에 여기까지는 ‘50점’의 성과였다. 범죄수익과 다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선 그의 은신처를 확실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김 회장에 대한 설득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까지 거두게 됐다. 바로 이 전 부사장의 존재였다.
지수대는 수원여객 사건 해결을 위해 김 회장을 쫓고 있었는데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이 전 부사장이 같이 도피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김 회장과 함께 현장에 들이닥친 경찰은 이 전 부사장을 바로 체포했다. 그는 체포에 큰 저항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저항은 또 다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김 회장과 이 전 부사장 외 제3의 인물이 있었던 것. 라임의 자금 조달책이었던 전 신한금융투자 심모 팀장이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다른 주택의 지붕으로 달아났지만 멀리 달아나지 못했고, 인근에 숨어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해 체포했다.
이들의 은신처에서는 수억원의 현금이 발견됐다. 이승명 지수대장은 “범죄수익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원여객 횡령 범죄 자금인지 다른 범죄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영화 같은 라임사태 핵심 인물들의 체포 작전이 마무리됐다. 뜻밖의 성과를 낸 경기남부청 지수대는 우선 수원여객 횡령 사건에 대해 김 전 회장을 수사한 뒤 김 전 회장의 신병을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그러나 이와 무관한 이 전 부사장과 심 전 팀장은 서울남부지검으로 바로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라임사태에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와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이 없었는지에 대해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또한 라임과 펀드 판매사가 펀드의 부실을 알면서도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했는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