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차지마라]"막내가 쉰살이에요"…서울 마지막 연탄공장 겨울나기

유현욱 기자I 2016.12.23 06:30:00

연탄사용 뚝↓·가격인상 여파에 '쌍탄기' 절반 멈춰
겨울철 공장 인근 교통 마비는 옛말
직원 대부분 50~70대, "고되지만 저소득층에 온기 전할 생각에 일 그만 둘 수 없어"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인근에 있는 연탄공장 ㈜고명산업 전경. 서울에 남은 연탄공장은 현재 ㈜고명산업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사진=유현욱 기자)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일기 예보에도 없던 진눈깨비가 내린 날 찾은 ㈜고명산업.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 역 인근에 위치한 이 회사는 서울 시내에 둘 밖에 남지 않은 연탄 공장이다. 겨울이면 연탄을 싣기 위해 온 트럭들이 공장 앞마당뿐 아니라 구청 앞 도로까지 가득 메웠다는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게 공장은 한산했다. 기자가 도착한 시간에는 3.6㎏짜리 연탄 2000여장을 실은 2.5톤 트럭 한 대가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신희철(63) 고명산업 전무는 “7년 만에 연탄가격이 올라서인지 하루 평균 판매량이 25만~30만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연탄 사용 가구 비중 감소와 정부의 가격 인상 여파 등으로 현재 ‘쌍탄기’(연탄을 찍어내는 기계) 10대 중 절반이 가동을 멈췄다. 쌍탄기는 1분에 60장,
30년 넘게 연탄 판매상을 해 온 박동렬(61)씨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1시간에 3600장의 연탄을 찍어낸다.

주문 차량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쌍탄기는 연탄을 찍어낸다. 10대가 동시에 돌아가면 1시간에 3만 6000장을 생산한다.

저탄장의 석탄을 불도저로 밀어 고르게 부순 뒤 쌍탄기에 넣으면 구멍 22개가 뚫린 지름 15㎝·높이 14㎝의 연탄이 탄생한다. 석탄이 연탄으로 변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분 정도. 갓 태어난 연탄은 곧바로 150m 길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운송 차량으로 이동한다.

신 전무는 “연탄소비가 많을 때는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쉴새없이 쌍탄기를 돌려야 했지만 요즘은 오후 6시 30분이면 공장을 닫는다”고 말했다.

생산관리를 맡고 있는 유재석(66) 부장은 연탄공장에서 40년을 일했다. 그는 “석탄을 말리는 과정부터 연탄 구멍의 수까지 누가 가르쳐 주거나 책에서 배운게 아니라 수십 년간 연탄을 만들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라고 설명했다.

공장 한켠에는 강원과 충북의 탄광에서 기차에 실려온 석탄이 5m 높이로 쌓여 있었다. 저탄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주문이 들어와야 화차에 담긴 석탄을 퍼낼 텐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자 직원들은 분주해졌다. 컨베이어밸트는 사람이 종종걸음을 치는 정도의 속도로 돌아간다. 컨베이어밸트 앞에 선 연탄 판매상들이 깨진 연탄은 걸려내고 성한 연탄만 골라내 트럭 짐칸에 쌓는다. 선택받지 못한 불량 연탄들은 컨베이어밸트를 돌아 다시 쌍탄기에 들어간다. 2.5톤 트럭 한 대를 연탄으로채우는 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연탄을 골라내고 적재하는 인부들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연탄판매상인 박동렬(61)씨는 굳은살이 박힌 자신의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박씨는 “30년 넘게 이 일을 했는데 굉장히 힘들지만 보람도 크다”고 했다.

고명산업의 직원 30여명은 모두 50~70대로 고령자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간혹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연탄공장을 찾아오지면 한달을 버티는 사람이 없다. 이 공장에서 가장 나이 어린(?) 직원이 50세다. 가장 고령자는 71세다. 연탄공장에서 일하지만 집에서는 모두 기름·가스 보일러를 쓴다.

유 부장은 “연탄을 때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은 한번쯤 연탄가스 중독으로 고생한 적이 있지만 따뜻한 온기에 고마워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며 “ 연탄불로 달궈진 아랫목이 전할 온기를 생각하면 힘들어도 일을 그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2.5t트럭 한 대가 연탄 2000여개를 가득 싣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연탄 원료인 석탄이 5m 높이로 저탄장에 쌓여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판매상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두 장씩 포개 나오는 연탄을 트럭에 싣고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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