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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3월 서울 관악구에 사는 A(58)씨는 남편 송모(61)씨에게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검찰은 송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씨를 돌볼 보호자가 없다”며 기각했다. 두 달 뒤 A씨가 다시 폭행을 당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법원은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끝내 A씨를 살해한 송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대악(가정폭력·학교폭력·성폭력·불량식품)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다짐과 달리 공권력의 무관심 속에 가정폭력 피해자가 방치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가정폭력을 여전히 ‘집안 문제’로 치부하는 탓에 피해자들의 위험 신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가정폭력사범으로 검거된 인원은 10만 832명에 이른다. 2011년 7272명에서 지난해 4만 7549명으로 6.5배로 늘어났다.
신고 건수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총 22만 7727건으로 하루 평균 624건 꼴이다.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특성을 감안하면 전체 가정폭력 사건에 비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여성가족부의 ‘2013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가정폭력 피해자 중에 경찰 신고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 2.1%·남성 0.3%에 불과했다.
◇피해자 보호 보단 가정 유지 우선…상처 곪는 피해자들
가정폭력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낮은 기소율·솜방망이 처벌 등 검찰과 사법부의 안이한 대처로 피해자가 다시 범죄에 노출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 기소율은 지난 2011년 18%에서 지난해 9%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재판 청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불기소 처분 비율은 2011년 64.1%·2012년 62.6%·2013년 60.4% 등 60%를 웃돈다.
특히 재판에 넘어가도 주로 불처분이나 상담위탁 위주로 처분되고, 접근행위제한·전기통신이용 접근행위제한은 극히 미미한 상황이다. 법원행정처의 ‘2016 사법연감’에 나온 지난해 가정보호사건 현황을 보면 불처분(43.4%)·보호처분 중 상담위탁(16.0%)·사회봉사수강명령(8.0%)이 67.4%로 절반을 훨씬 넘는다. 반면 접근행위제한·전기통신이용 접근행위제한 등은 0.8%에 그쳤다.
가해자 격리 조치 등 적극적인 피해 예방책이 부족한 탓에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자녀면접교섭권을 내세워 찾아온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모두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고, 2013년에는 법원이 부부상담 명령을 내린 상황에서 남편이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전문가들은 가부장적 관념 등으로 가정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이 근본적인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고미경 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경찰이나 검찰, 법원 등 당국 관계자들에게 가정폭력 문제를 개인 가정의 일로 치부하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면 ‘집안 일이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거나 법원 등에서도 피해자 인권보다 가정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