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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예상은 했지만 역시 미국에서의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쉽지 않은 모습이다. 간밤 발표된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대비 0.1%, 전년동월대비 0.9% 상승하는데 그쳤다. 변동성이 큰 음식료와 에너지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도 0.1% 상승하는데 그쳐 지난해 8월 이후 7개월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의 척도로 삼고 있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봐야겠지만 기준금리를 당장 더 올라야한다는 압박을 느낄 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진 않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기준금리 인상 지연 기대감은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베팅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하이일드채권(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해 위험이 높으면서도 그 만큼 이자율도 높은 채권)이다. 미국 하이일드채권 대표 금리로 활용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미국 하이일드채권 금리와 미 국채금리간 스프레드(=금리 차이)는 지난 2월 중순 8.87%포인트까지 확대됐지만,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경제와 금융시장 불안을 걱정하자 빠른 속도로 축소모드로 돌아섰다. 3월에도 잠시 주춤하던 스프레드는 옐런 의장이 뉴욕 이코노믹클럽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조심스럽다”고 토로하자 다시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들어서만 하이일드 상장지수펀드(ETF)로 순유입된 자금도 61억달러(약 7조4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비단 미국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천덕꾸리기 신세였던 여전채를 중심으로 크레딧물의 스프레드가 축소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하이일드펀드는 물론이고 증권사의 소매채권 투자가 인기를 끌면서 이번주 발행에 나선 중앙일보와 아주산업 등 BBB급 신용등급 기업들의 회사채도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수요가 몰리다보니 발행금리가 민평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고 발행규모를 더 늘리는 경우도 눈에 띄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국제유가 반등과 고용 호조,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임금 인상 등으로 미국 인플레이션이 본격 상승할 수 있는 토대가 확실하게 갖춰져 있는 만큼 6월에 가까워질수록 기준금리 인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한계기업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가격 메리트가 떨어진 위험자산이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같은 위험자산 선호가 유지되는 한 주식시장 전망은 크게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여당이 밀어부친 한국판 양적완화(QE) 기대감이 약화되긴 했지만 경제 살리기로 회생을 꿈꾸는 여당으로서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동시에 한국은행에 대한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시에서의 유동성 장세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