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약가인하로 제약업계 발목
지난 몇 년간 제약업계의 발목을 잡았던 불법 리베이트와 약가인하가 올해에도 가장 큰 화두였다.
업계 맏형격인 동아제약(000640)이 의사들에게 48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적발된 것을 시작으로 일양약품, 대웅제약, 삼일제약, 일동제약, 동화약품 등이 곤혹을 치렀다. 동아제약은 리베이트 수수 혐의를 받는 의사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에 전문의약품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이중고를 겪어야했다.
올해 초에는 리베이트 의약품 600여개가 무더기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는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감사원이 공정위 감사에서 리베이트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건을 식약처에 통보, 후속처분을 하라고 지시하자 식약처가 뒤늦게 행정처분 검토에 착수했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리베이트 의약품의 행정처분 기준을 판매금지 1개월에서 3개월로 강화했다.
약가인하의 그림자도 제약업계를 덮쳤다. 복지부는 작년 4월부터 건강보험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평균 14% 깎은데 이어 올해에도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목표로 약가인하 정책을 강화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매출이 급증한 제품의 보험약가를 깎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를 확대 개편했다. 내년부터는 처방액이 전년보다 10% 이상 증가하고 절대금액이 50억원 이상 증가하면 약가를 최대 10% 깎기로 했다. 매출 규모가 큰 제품의 약가를 떨어뜨려 재정절감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내년 2월 재시행되는 시장형실거래가제도로 제약업계는 비상이다.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보험상한가보다 싸게 구매하면 차액 일부를 돌려주는 이 제도로 제약사들은 의약품의 저가 공급과 이에 따른 약가인하로 적잖은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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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의 지속되는 규제가 업계 지형의 변화를 이끌었다. 우선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제네릭 회사 알보젠이 근화제약을 인수했고 세계 1위 제네릭 업체 테바는 한독과 손 잡고 지난 10월 한독테바를 출범시켰다. 신풍제약은 프랑스바이오업체 LFB바이오테크놀로지와 합작사를 설립키로 하고 충북 오송에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화일약품은 바이오업체 크리스탈지노믹스에 인수됐고 바이넥스는 일본 제약사 니찌이꼬에 매각됐다.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업체의 투자를 이끌어낸 경우도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업체들이 사업 포기를 검토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지난 13일 태평양제약의 의약품 사업부문을 한독에 넘겨준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쟁력을 갖춘 신약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의 규제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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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과거 한국 시장에서의 성패는 영업력에 달렸다는 인식이 컸다”면서 “최근 리베이트 규제 강화로 영업현장이 투명해져 우수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가제도의 변화가 알보젠, 테바 등 해외 제네릭 업체의 국내 시장 진출를 앞당겼다. 종전에는 제네릭의 경우 시장에 빨리 진입할 수록 높은 약가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뒤늦게 제네릭 시장에 뛰어들수록 낮은 약가를 받기 때문에 후발주자는 시장 진입의 매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약가제도 개편으로 다른 제품보다 늦게 등재된 제네릭도 최고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후발주자도 제네릭 가격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제약사들이 국내기업 인수 등을 통해 제네릭 시장에 뛰어드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단장은 “제약산업의 환경 변화로 글로벌 역량확보를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인수합병 움직임이 일고 있다”면서 “대형 M&A 뿐만 아니라 조인트벤처, 사업부별 합병과 같은 변화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