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표심' 의식한 남발 안 된다

논설 위원I 2020.11.02 06:00:00
더불어민주당이 지역 대형 건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면제 방침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말 광주시의회와 전북 부안군청 등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절박한 마음을 갖고 왔다”며 “전라선 KTX에 대해 전남과 전북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타에서 비효율적 평가가 나와도 사업을 강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앞서 민주당 부산시당은 지난달 7일 부산의 경부선 지하화 등에 대한 당 차원의 예타 면제 방침을 전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당력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예타 조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대형 사업의 정책적· 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무리한 사업 추진을 막아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여당 대표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방문한 자리에서 ‘주민 숙원 사업’이라며 예타 면제 암시 발언을 하고 다른 지구당은 ‘당 차원’이라며 예타 면제를 다짐했다. 현 정부 출범 후 국가 채무가 급증한 데다 2050년 4113조3000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국회예산정책처가 경고한 걸 감안하면 무분별한 선심 공세로 비판받을 수 있다.

여당의 예타 남발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내 역학 관계상 유력 주자들의 선심성 약속이 늘어날 것이 뻔해서다. 한국판 뉴딜 사업에 160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정부가 이 중 75조3000억원을 지역균형 뉴딜에 투입하기로 함에 따라 130여 지방자치단체 사업에서도 예타 면제가 줄줄이 쏟아질 전망이다.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임박할 수록 지역 발전을 구실로 예타 면제가 ‘선물’로 악용될 소지 또한 크다.

예타 제도의 근본 취지를 존중하고 국가 재정의 내일을 걱정한다면 정치권은 예타 면제를 지역 주민들의 환심 사기나 득표 전략에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선심성 퍼주기로 나라 곳간이 바닥나고 국가 채무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에서 세금 낭비를 초래할 행위가 만연한다면 재정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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