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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미술평론가] 윌리엄 블레이크, 요한 볼프강 괴테, 길버트 체스터턴, 토머스 하디, 브론테 자매, 미하일 레르몬토프, 앨프레드 테니슨, 존 로널드 톨킨, 브루노 슐츠, 헤르만 헤세, 헨리 밀러. 이들 문인의 공통점은? 모두 그림을 그려 본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들은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준 문인이고, 그들의 그런 능력과 미술작품 제작의 경험은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미술이 관찰능력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물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이 보고 또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만년을 기록한 필름 중에는 모네가 지베르니정원에서 연못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있다. 20세기 초에 촬영한 무성 흑백필름이어서 움직임이 약간 빨라 보이기는 하지만, 1분 15초 동안 모네는 무려 23차례나 연못 쪽을 바라봤다. 그리는 것보다 보는 데 시간을 더 들인 셈이다. 모네는 그토록 집요한 관찰자였고, 바로 그 관찰능력으로 근대미술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인상파 화가들, 그리는 것보다 보는 데 시간 더 들여
모네뿐 아니라 인상파 화가들은 대부분 관찰의 대가였다. 그런 점에서 인상파 미술은 진정한 관찰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생생히 가르쳐주는 미술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관찰은 단순히 사물의 외양을 파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물의 질서를 꿰뚫어보고 오리지널한 시각에서 그 질서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이끈다. 인상파 미술은 바로 그 특질을 선명히 드러내 보인 미술이라 할 수 있다.
인상파 회화는 흔히 ‘빛의 회화’라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을 묘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 이전 화가들이 빛의 표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옛 화가들은 빛과 대상을 분리해 사고했다. 대상은 대상대로 존재하고 빛은 그 위에 덧씌운 막처럼 인식했다. 옛 화가들에게 궁극의 주제는 언제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의 인식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대상이 아니라 빛이 그림의 주제였다. 그들은 우리의 눈이 지각하는 게,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 반사돼 나온 빛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시각예술로서 미술은 당연히 다른 무엇보다 빛을 표현해야 했다. 그것이 인상파 화가들의 생각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전의 그 어떤 화가들보다 야외에서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선배 화가들에 비해 자연을 훨씬 깊이 관찰했고, 빛의 성격과 특질에 대해서도 근원적인 성찰을 했다.
인상파 이전의 서양화가들은 대부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풍경화조차 말이다. 물론 처음 구상을 위해서는 야외로 나가 종이에 스케치를 하곤 했지만, 본격적인 유화 작업은 작업실로 돌아와 시작했다. 그래서 인상파 이전의 풍경화는 빛을 관념적으로 혹은 상투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네·르누아르·피사로…같은 빛 관찰하고도 저마다 뚜렷한 개성
반면 인상파 화가들은 심지어 눈비를 맞아가면서도 현장에서 그렸다. 모네는 겨울이면 손난로를 준비해 나갔고, 바람이 드센 벼랑에서 그릴 때는 줄로 이젤과 몸을 바위에 묶었다. 대작을 그리느라 윗부분을 칠하기 어려울 때는 땅에 참호를 파 캔버스를 그 안에 내린 뒤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늘 치열하게 눈앞의 상황을 보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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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통해서 인상파 화가들은, 빛 하면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떠올리는 평온한 날의 날빛뿐 아니라 온갖 표정의 자연빛을 관찰하고 표현하게 됐다. 빛을 그리며 그들이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빛은 끝없이 변하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모네는 ‘루앙대성당’ 연작을 30여점 그렸는데, 성당은 같은 건물이어도 풍경 속의 빛은 새벽, 아침, 한낮, 오후, 해질 무렵, 안개 끼었을 때, 비가 올 때, 봄, 여름, 가을, 겨울, 순간순간 다 다르다. 그런 까닭에 이 시리즈의 진정한 주제는 성당이 아니라 빛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자연의 빛을 똑같이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화가들의 그림이 서로 매우 달라졌다는 것이다. 모네와 르누아르(1841∼1919), 피사로(1830∼1903), 드가(1834∼1917), 세잔(1839∼1906)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저마다 뚜렷한 표현의 차이와 개성을 보여준다. 동일한 빛을 관찰하고 표현했는데, 왜 이런 개성과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이들이 그만큼 진득하고 진정한 관찰을 했다는 데 있다. 진득한 관찰은 차이와 차별화를 낳는다.
창의력 연구가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객관적 관찰은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들에 따르면 관찰자는 자신이 지닌 정신적 편견과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인 이유다. 관찰이 진득하게 진행되면 될수록 관찰자는 그만의 고유한 편견과 경험에 따라 남이 못 보는 것을 보게 되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창조와 혁신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비타민C를 발견한 생화학자 알베르트 스젠트 기요르기(1893∼1986)의 경험을 든다. 기요르기는 색채를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는데, 그의 이런 성향이 그로 하여금 무언가를 관찰할 때 자꾸 색채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상할 때 색깔이 변하는 과일(바나나 등)과 그렇지 않은 과일(오렌지 등)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그는 식물의 폴리페놀이란 화합물이 산소와 작용해 과일을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색깔이 변하지 않는 과일은 또 왜 그리된 걸까. 폴리페놀이 산소와 작용해서 산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다른 화합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비타민C였다. 결국 색채의 차이에 대한 그의 관심이 비타민C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가 만약 색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면 이 위대한 발견의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관찰은 이처럼 관찰자의 개인적 경험과 성향에 따라 ‘유니크’한 결과를 내놓게 만든다.
△“혁신가는 본질적으로 관찰자”…관찰, 가장 나다운 혁신 가능케 해
우리가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 테이프도 관찰자의 취향과 주의 깊은 관찰이 어우러져 탄생한 상품이다.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1907∼1990)은 사냥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 날 토끼를 잡으러 숲에 갔다가 옷에 산우엉가시가 잔뜩 붙어버렸다. 옷을 털어도 보고 세게 흔들어도 보았으나 가시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사냥꾼답게 집요한 관찰자였던 그는 결국 확대경까지 들이댔다. 아니나 다를까. 가시의 모양이 갈고리 형태여서 한 번 들러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순간, 그의 머리에는 갑자기 이 원리를 응용한 기능성 테이프 상품이 떠올랐다. 바로 벨크로 테이프였다. 이렇게 해서 지퍼와 단추, 끈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한 벨크로 테이프가 탄생했다.
GE는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많은 디자이너의 관찰 덕에 CT 촬영기를 어린이 친화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었다. 어린이는 CT 촬영을 대부분 두려워한다. 한 병원에서 CT 촬영기 앞에서 오열하는 아이를 본 GE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팀을 데리고 어린이 미술관 등 어린이 시설로 찾아가 아이들이 사물에 접근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CT 촬영실을 해적의 방으로 꾸미고 촬영기를 해적선으로 변모시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어린이 환자 중 80%가 진정제를 투여받고 CT 촬영을 했는데, 이후 그 숫자는 20%로 줄어들었다.
이 사례를 언급하며 세계적인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교수인 할 그레거슨은 “혁신가는 본질적으로 관찰자”라고 말했다. 이처럼 관찰은 대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행위인 동시에 나 자신의 잠재력과 독창성을 확인하는 행위다. 관찰은 가장 나다운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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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파 회화 & 인상주의 미술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색채나 색조, 질감에 관심을 두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미술’을 추구한 화가의 무리를 ‘인상파’라고 부른다. 인상파·인상주의란 용어는 1874년 파리의 한 전시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술계의 이단아던 모네·파사로·시슬레·드가·르누아르 등이 연 ‘화가·조각가·판화가 무명예술가협회 제1회전’이다. 8회까지 이어진 전시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는데, 이전까지의 엄격한 형식이나 균형·구도가 아닌 강렬한 색상, 거친 붓질로 그저 그런 평범한 풍경·일상을 담아낸 작품이 줄지어 나섰기 때문이다. 그 첫 전시에서 현장을 목도한 이들 중 기자 루이 르루아가 있었다. 전시를 비딱하게 본 그는 전시작 중 한 점인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에서 딴 ‘인상’이란 말로 ‘인상파의 전시’란 비아냥거리는 글을 쓰게 됐는데, 오늘날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인상파는 바로 이 조롱에서 탄생한다. 당시 인상파 회화가 발전하는 데는 뜻밖의 조력자가 나서기도 했는데, ‘물감튜브’와 ‘증기기관차’다. 빛을 좇는 야외작업을 하는 화가들을 작업실 밖으로 이끌고 이동시킨 결정적 도구이자 동기였다는 것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