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카페] 실버 크리에이터 전성시대.."늦은 건 없어"

김유성 기자I 2018.06.30 10:27:36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구글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IO가 열렸던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근처 쇼어라인 극장. 이날 행사의 백미인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기조연설(키노트스피치)를 기다리고 있던 중 한 기자가 소리쳤습니다.

“박막례 할머니다!”

대여섯명의 한국 기자들은 한 할머니를 향해 뛰어갑니다. 손녀와 함께 온 박 할머니는 서울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현지 외국인들은 의아하게 쳐다봤습니다. ‘보통의 할머니 모습인데 저 동양 기자들은 왜 저럴까.’

할머니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온 기자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습니다. 박 할머니와 찍은 사진입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유튜브 스타라고 해도, 그곳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 박 할머니는 화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구글 IO 현장에서 한국 기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는 박막례 할머니 (사진=김유성 기자)
박 할머니가 머나먼 구글에 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구글은 박 할머니를 한국내 대표적인 유튜버로 초청했습니다. 소위 ‘크리에이터’ 대표로 박 할머니가 구글에 온 것이지요. 어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할머니의 편안한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보면 끊을 수 없는 마성의 매력, 72세 크리에이터 인생은 아름다워.’

박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 부제입니다. 올해 6월 기준 유튜브 구독자 수 44만명 정도로 수많은 크리에이터 중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참고로 유튜브 구독자 1만 이상이 부업, 10만 이상이 전업의 기준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박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은 전업을 넘어 고소득 전업자 대열에 합류한 것이지요.

박 할머니가 유튜브 시작 목적은 치매 예방이었습니다. 손녀가 할머니의 영상을 촬영하면서부터였지요. 박 할머니는 그 전까지 평생 식당 일을 했습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일흔 나이에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지요. 한국 대표로까지 구글 행사에 갈 정도가 됐습니다.

박 할머니의 영상은 거침없고 솔직합니다. ‘계모임 갈 때 메이크업’, ‘용인 시내 요즘 것들 메이크업’ 등 할머니의 시선에서 본 독특한 콘셉트의 콘텐츠입니다. 고령의 나이에 카약 타기, 파스타 먹기 등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곤 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볼 수 없었던 감동이 박 할머니의 채널에는 있었습니다.

박 할머니의 노력은 세대간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지난 28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정보 문화 격차와 ICT 역기능을 해소한 모범 사례로 박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은 꼽혔습니다.

박 할머니를 무섭게 추격하는 또 다른 할머니 유튜버가 있습니다. 김영원 할머니로 올해 연세 여든입니다. 김 할머니도 박 할머니 사례와 유사하게 손녀가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였지요.

김 할머니의 주된 콘텐츠는 ‘먹방’입니다. 할머니가 식사하는 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신전 떡뽁이’, ‘머랭쿠키’, ‘타이거 새우 버터구이’ 등 김 할머니가 보인 음식 맛에 대한 표현은 꽤 매력적라는 평가입니다.

김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약 15만명, 누적 조회수 약 1200만회입니다. 취미를 넘어 전업 수준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유튜브 외에 인스타그램에서도 활동하는 실버 크리에이터가 있습니다. 패셔니 스타로 소문난 여용기 할아버지(65세)와 ‘손자 바보’ 이찬재 할아버지(76세)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할아버지들은 젊은 세대들로부터 ‘멋지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년기 쓸쓸하게 보내는 할아버지들이 많지만, 이 분들은 제2, 제3의 인생으로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에너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닉 우스터’로 불리는 여용기 할아버지는 인스타그램 구독자가 5만 2000명 정도 됩니다. 부산 남포동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여 할아버지는 본인이 직접재단한 옷을 인스타그램에 선보이고 공유합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부산 바닥에서는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여용기 할아버지 인스타그램
이찬재 할아버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거주하는 교포입니다. 한국과 미국에 사는 손자들에 한국의 전통 문화, 한국에 있었던 추억과 풍경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글과 함께 전시합니다.

2015년말부터 매일 하루에 그림 한장씩 올리다보니 손자를 위한 그림은 약 500여장 정도됩니다. 팔로워는 38만명 가량입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영국 BBC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갤럽이 발표한 2012~2017 스마트폰 사용, 사이버 공간에서의 읽고 쓰기에 따르면 작년 7월 기준 만 65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45.7%로 나타났습니다. 5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인터넷 노년 사용자들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버’ 크리에이터 수는 적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들은 젊은이 못지 않은 ‘감각’으로 유튜브·SNS 스타가 됐습니다.

이 분들이 스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구독자들과의 소통. 그 다음으로는 구수하지만 솔직한 매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처럼 시간과 기술이 필요한 콘텐츠는 손녀 등 친인척의 도움이 컸습니다.

가장 큰 비결은 꾸준함입니다. 여기에 ‘그림 그리기’, ‘메이크업’, ‘옷 재단’ 등의 특기가 더해지면서 구독자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꾸준함과 특기, 소통 능력만 있다면 나이는 상관이 없다라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나이와 성별, 직업과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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