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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너무 없어서 불만이었는지 몰라요. 10년 뒤 삶도 계획이 가능할 만큼 루틴한 일상이었죠. 하지만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 답답했어요. (방송사 생활에) 후회는 없는데 그립긴 하네요.”
잘 나가는 KBS 아나운서 고민정에서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 대변인, 그리고 청와대 부대변인까지 올 한해 드라마틱한 변화에 대한 그의 답이다.
“20대 중후반부터 저는 늘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따뜻하고,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그걸 충족시켜주는 사람이었죠. ‘쇼가 아닌 진심’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정치엔 전혀 관심 없다는 그녀가 대선 캠프에, 또 청와대까지 발디디게 된 이유다. 편안한 삶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조금 부딪치고 깨지더라도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 가득이다. 서른아홉의 나이. 40대를 앞두고 ‘고민정만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기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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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를 지망했던 게 아니에요. 그저 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아나운서’라는 직업으로 찾아 준 게 지금의 남편이었죠. 대선 캠프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편안함에 안주한다고 고민하던 제게 캠프에서 왜 필요한지, 가지 않았을 때 어떤 반대 급부가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남편의) 질문들이 저를 키워왔던 것 같아요.”
쉽진 않았다. 11살의 나이차. 6년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남편의 강직성 척추염(희귀병)까지. 그녀는 통상 남성이 지닌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조기영 시인은 고 부대변인을 대신해 전업주부로 두 아이를 돌본다. 어색할 법도 한데,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심지어 조기영씨는 아이들의 가정통신문에 아빠 직업을 ‘시인’이 아닌 ‘전업주부’로 명기할 정도다.
“육아하는 아빠로서 장식품처럼 ‘도와줄게’가 아닌 육아하는 남자죠. 엄마가 키울 때와 다르게 내버려 두는 부분이 커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자라는 것 같아요. 일례로 저는 두부를 줄 때 굽거나 튀기거나 익혀서 주는 반면 남편은 생두부에 간장만 쳐서 주는 식이죠.”
이런 남편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민정이 있다고 했다. 주부 조기영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 둘을 오롯이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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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는 기억도 잘 못하시지만, 그녀에게 이 말은 인생 최고의 장면이 됐다. 어느 순간 주저하고 좌절하고 고민할 때면 이 말을 기억하곤 한다.
“저의 변하지 않는 목표는 행복하고 싶다는 거죠. 나 스스로 행복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나운서였고, 캠프에 간 것도, 청와대에 온 것도 비슷해요. 직업은 도구일 뿐, 목표는 아니에요. 앞으로 제가 무슨 길을 갈 지 모르지만, 늘 고민하고 부수고 버리면서 찾아갈거에요.”
부수고 버리는 것에 익숙한 그녀. 40대에는 아무리 작아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고민정 부대변인은 10월 25일 반포 세빛섬에서 열리는 제 6회 이데일리 W페스타에서 Scene 3 느낌표(!) ‘최선을 다할 때 우리가 빛난다’에 출연, 최명화 최명화앤파트너스 대표·이은경 여성변호사회 회장·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이행희 한국코닝대표 등과 함께 지금껏 지내온 고민들과 선택의 순간, 경험들을 함께 공유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W페스타 홈페이지(www.wwef.or.kr)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