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의 회계처리기준 위반혐의에 대한 제보가 접수돼 감리에 착수했음. 공사 관련 회계를 적정하게 했는지를 감리할 예정”
이 보도자료가 배포된 뒤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금융당국이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습니다. 금융감독원은 대우건설이 분식회계로 수천억원 규모의 매출액을 부풀렸다고 보고 건설사와 회계법인에 중징계를 통보했습니다. 결론은 다음 달에 열릴 감리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2013년 겨울에 잠깐 등장한 예고편이 본방송을 앞둔 겁니다.
◇금감원, 대우건설의 ‘공사손실충당금’에 주목
금감원이 주목한 것은 ‘공사손실충당금(工事損失充當金)’이란 계정입니다. 이 계정은 건설사가 주기적으로 역마진이 날 금액을 평가해 그때그때 손실로 처리하는 항목입니다. 또 공사 발주처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등 앞으로 거액의 손실이 예상되는 사건이 있을 때도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반영해 손실처리합니다.
수주기업인 건설사는 제조업체와 달리 만들어진 상품이 팔렸을 때 매출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진행률을 계산해 매출을 인식합니다. 건물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체처럼 상품가격에 판매수량을 곱해 매출액을 인식하면 공사기간 동안에는 매출액이 ‘0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중인 건물을 팔수는 없으니까요. 매출이 나오지 않는 회사에 사업자금을 빌려줄 금융기관도 없을테니 제조업체처럼 회계처리를 하라고 하면 아무도 건설업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관련 기사→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성완종 회장이 말하고 싶었던 것)
이 때문에 매출액 100억원짜리 공사를 수주하면 공사를 얼마나 진행했는지에 따라 매출액을 잡습니다. 공사가 20% 진행됐다면 매출액은 20억원이 되는 식이지요. 공사진행률은 실제투입원가를 총공사예정원가로 나눈 비율입니다. 1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사에 50억원이 투입됐다면 공사진행률은 50%라고 보는 것이지요.
매출액만 이렇게 인식하는 건 아닙니다. 예상되는 손실액도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 즉각 반영해야 합니다.
가령 매출액 100억원짜리 공사를 수주했는데 공사가 70%만큼 진행돼 70억원을 매출액으로 이미 인식했다고 가정합시다. 남은 공사를 마저 끝내더라도 앞으로 더 들어올 수 있는 매출액은 30억원 밖에 없지요. 하지만, 앞으로 공사에 더 투입해야 할 원가는 7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되면, 70억원을 들여 고작 30억원의 수익이 들어오게 되니까 40억원만큼의 역마진이 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손실이 예상된 금액은 공사손실충당금 계정으로 쌓아 재무제표상에서도 손실로 잡습니다.
금감원은 대우건설이 이렇게 미리 공사손실충당금으로 쌓아야 함에도 쌓지 않은 돈이 수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중징계 감의 분식회계 혐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우건설 “상황에 따라 예상 손실 달라져…‘합리적 추정’ 어려워”
물론 건설사 입장에선 부동산 경기와 환율, 유가, 인부 인건비, 철근·시멘트 가격 등 대외상황에 따라 예상 투입 원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예상 손실을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금감원의 잣대로 보면 모든 건설사들이 분식회계 혐의로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우건설을 회계감사한 삼일회계법인은 이에 대해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징계 여부가 확정된 뒤에 입장을 이야기할 것이라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대우건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징계 안건을 의결해야 할 증선위는 큰 숙제를 떠안은 셈입니다.
예상투입 원가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미리미리 손실을 반영하지 않고(또는 ‘못’하고) 한꺼번에 대규모 손실을 털어내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왔던 건설사들. 그 회계처리의 ‘적폐’를 청산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 건설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이제까지의 관행을 ‘건설업의 규범’으로 만들 것인지가 감리위원들과 증선위원들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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